진주성-사천(삼천포)항일투사 장태영
진주성-사천(삼천포)항일투사 장태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1 11: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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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사천(삼천포)항일투사 장태영


장태영(張台永)(1880~1945년)선생의 이명은 張泰永이고 사천시(삼천포) 이금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 오신분이다.

남양면의 박종실 선생이 진주 3·1운동 지도자 강달영, 박진환 등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삼천포보통학교 황병두 교사와 학생들을 포섭한 일이 있고 장태영 선생은 부친께서 동학에 가담 활동하였으므로 천도교 손병희 선생과 연결되었고 장태영 선생도 동학(천도교)와 연계한 항일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장태영 선생은 서울의 고종황제 인산에 참예하고 시위운동을 목도하고 독립만세에 동참하였고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받아 내려오면서 삼랑진을 지나갈 때 위기가 있었으나 무사히 사천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장태영 선생의 아들이 삼천포보통학교 재학 중 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포섭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장태영 선생은 김태성, 김태근 형제와 장주학, 전영조, 박상진, 빅상윤 등을 설득해 동참케 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1919년 3월 25일 삼천포보통학교 졸업식을 거행하는 날 3곳에서 동시에 시위하기로 했으나 학생들이 흥분해 졸업식이 끝나기 전에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내로 진출하자 해변 가에 대기하고 있던 청년들도 선구리 장터로 달려가 시위를 전개하고 시민들도 동참해 만세물결. 태극기 물결을 이루며 천지를 진동케 했다.

장태영 선생은 천도교 포덕사, 종법사, 지부장을 거쳐 뒤에 종정(宗正)과 같은 법정에 까지 오른 분으로 손병희 선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받아 온 독립선언서를 진주에 사는 친족 장덕익에게 전하고 삼천포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이금동 천도교당에 항암 최진규 선생의 포덕불망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 내용에 장태영 선생과 3·1운동에 대하여 새겨져 있다.

장태영 선생은 신미당 노문선과 혼인했고 장남은 1980년에 죽고 손자 장춘갑은 이금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장정갑은 삼천포 벌리동장(사무관)으로 정년퇴직하고 또 다른 손자들은 효갑, 진갑, 준갑, 정갑, 형갑, 의갑, 민갑, 종갑, 정기, 수갑, 윤갑, 태갑, 경갑 등이 있다.

장태영 선생의 묘소는 이금리 선영에 안장되었다. 장태영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공적비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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