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노천 박물관 Ⅰ
경주남산-노천 박물관 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3.27 1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삼희/창신대학 소방방재학과 외래교수ㆍ시인
삼릉 송림 숲 사이 바람은 조금 스러지는가 했더니 숲을 점령 하러 조르르 따라온다. 신라왕 가운데 8대, 53대, 54대, 왕의 무덤이 있는 삼릉에서 잠깐 예를 갖춘다. 늘씬하게 쭉 자란 잘생긴 소나무 뿌리들의 맥이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붙잡는다. 비틀거리며 몸을 키워가는 뿌리들의 신음소리가 마치 내 귓가에서는 우우 환청처럼 가까이 들리다 멀어진다. 혈관이 엷어진 모습 바라보다 이른 새벽 물안개도 내일을 기약했을 것이다. 한낮의 차가운 햇살은 산행의 리듬에 맞추어 적당한 온도와 빚을 내어준다. 빛 내림이 환해서 기분 좋은 날, 차갑지만 숲의 운치를 더해주고 산바람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삼국유사에 일연이 말하기를 절은 하늘에 별처럼 그 수를 가늠할 수 없고, 탑은 기러기 줄지어 가듯하다고 남산 전체를 노천 박물관이라 한 말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투명하게 얼은 계곡 물이 산내를 옆에 아스라이 두고 오르는 산행은 들뜬 기분을 가눌 수 없게 하며 상기시킨다.

신라천년의 찬란한 빛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 그런지 공기가 참으로 달고 맑아서 깊게 숨을 마시며 걷고 있다. 남산은 해발 468미터의 산으로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전설이 숨어 살고 있는 것 같다. 지난날 지명은 금어산이었는데 오늘날 금오산으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명상에 잠겨 말없이 걷다보니 눈앞에 돌부처 하나 중생을 위해 가부좌하고 앉았다. 8C후반의 머리 없는 불상이다. 정교한 매듭이 새겨진 돌부처를 보니 어느 석공의 애환이 이토록 절절한지 애가 탈 지경이다.

충격이다. 불두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유서 깊은 이곳에 무슨 사연으로 외로운 세월 이리도 갈라놓았단 말인가. 잠시 숙연하고 심오해서 말문이 막힌다. 지인들도 조용하다. 이유 없는 핑계가 어디 있으랴.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또 다른 길을 지인들은 재촉한다. 안타까움도 잠시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로 묵묵히 오른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허리를 펴려니 눈 앞 풍경이 장관이다. (보물)관세음보살, 석조여래좌상이 눈길을 돌릴세라 당당하게 반긴다. 세월의 흔적 속 고스란히 남아 희미한 선들을 아슴아슴 더듬게 한다. 곡선보다 차라리 밋밋해서 더 눈길을 오래 주고픈 연민의 관음보살.

오늘 따라 포근하다. 휘파람새의 노래 소리가 청아해서 모처럼 나온 산행이 감정의 기복에 따라 플러스로 되었다. 10분쯤 걸었을까. 이번엔 바위 돌부처, 목 부위가 잘린 온화한 자태의 바위부처가 있다. 도대체 남산에는 목 없는 돌부처가 몇 분이란 말인가. 안타까움도 이제 슬슬 적응이 되어간다. 산행은 보약보다 좋다 하지만 게으름은 늘 마음뿐이게 만들고 기운을 소진시킨다. 어느새 후줄근한 땀이 식으니 한기가 든다. 혼자 여유 부릴 겨를도 없이 싸한 바람과 함께 뒤를 따라 고행을 자처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