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림자에 속지 말지어다
칼럼-그림자에 속지 말지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6 18:4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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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그림자에 속지 말지어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설법하고 계실 때 어느 곳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신혼 초의 부부는 사이가 매우 좋았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부엌의 술을 가져와서 함께 마시자고 했다.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술 항아리를 열어 보았는데 그 안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자기 모습이 술에 비치는 줄 모르고 아내는 질투심이 일어 남편에게 가서 대들었다. “당신은 아름다운 여인을 술 항아리 속에 숨겨 두고 뻔뻔스럽게도 나와 결혼을 했다는 말이오?”이 말을 들은 남편은 놀랍기도 하고 이상해서 부엌으로 가서 술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는데 거기에는 젊은 남자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부(情夫)를 숨겨 두다니 네가 바로 간부(姦婦)로구나” 이리하여 화락한 즐거움을 누리던 금슬지락(琴瑟之樂)의 부부는 상대를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면서 원망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평소 친히 지냈던 바라문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부부싸움의 연유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려고 술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술 항아리 속에는 그들이 말한 여자와 남자는 보이지 않고 의젓한 바라문이 보였다. 그는 부부가 자기보다 더 친한 바라문이 생겨서 자기를 멀리하려고 꾸민 연극이라 생각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모두 자신의 그림자에 속아 오해만 하고는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행자가 찾아왔는데 그는 항아리 속의 사람이 모두 그림자란 것을 알고 공(空)을 실(實)로 생각한 어리석음을 가련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부를 술 항아리 옆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이 속에 있는 사람을 나오도록 해 드리겠습니다”하고는 큰 돌로 술 항아리를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된 부부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다시 화락한 금슬지락의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면의 허상·욕심·영욕에 눈 먼 중생들을 경책하고 어리석음에 갇혀 있는 중생들을 일깨우기 위한 말씀이 아닐까 한다. 어느 선사는 노래했다. 모여든 구름 속에 세상사가 다 들었네. 사람들의 명예와 부귀영화. 하지만 흩어진 구름 가운데 하늘은 청정하고 아무리 애잔해도 구름은 흩어지니 내 삶의 세속 꿈도 그와 같다네.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채우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면을 치장하는데 열을 더 올린다. 남보다 좋은 집에 살아야 하고 좋은 차를 타야 하는 등 밖으로 취하는 것에는 욕심의 끝이 없다. 하지만 버리고 털어내는 것에는 인색하다. 버려야 채울 수 있는 진리를 망각한 채 채우려고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안간 힘들을 쓰고 있다. 되돌아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모두들 그림자에 속고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어느 종교에서 언제 어느 때에 지구의 종말(휴거)이 오는데 자기들이 믿는 종교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온 세상이 떠들 썩 한 적이 있었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집이나 부동산을 팔아서 몽땅 거기에다 빼앗긴 사람도 있었는데 그 날이 왔는데 휴거가 오지 않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네들은 날짜 계산이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다음에 분명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이 어찌 그림자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그림자에 크게 속은 기네스감이 아니겠는가? 성철스님께서는 “허상에 속지 말라”는 큰 법문을 남기고 가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몇 권의 책 제목에도 ‘청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강물은 굴곡을 탓하지 않는다’, ‘주먹 쥐고 왔다가 주먹 펴고 가는구나’,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고 꿈에 청산을 올라가도 다리가 아프지 않다’, ‘골짜기로 피어오르는 구름에 반하지 말고 임자 없는 달빛에 아첨하지 마라’, ‘향기 속에서 냄새가 배듯 안개 속에서 옷이 젖듯’, ‘인생은 끝없는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허물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영혼 없다’, ‘구름이 지나간 하늘 길에는 흔적이 없네’, ‘둔세불회(遁世不悔)·은둔해 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의 철학’라고 정해보면서 그림자의 실체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기도 했다. 오늘이 제헌절이다. 우리가 만든 법이 흩어지는 그림자에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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