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구속에 따른 행복
도민칼럼-구속에 따른 행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19 18: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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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구속에 따른 행복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밤새 비가 얼마나 왔는지, 텃밭 고랑 곳곳에 물이 고여 있다. 야외로 나가는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우산을 받쳐 들고 옆집 뒷집(?)을 돌아본다. 옆집은 가로세로 1m 남짓한 판잣집이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발바리 백구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를 보고도 별로 반가운 채를 하지 않는다. 조금 전 볼일 보러 나왔다가 비를 맞아 기분이 영 언짢은 모양이다.

집 모퉁이를 돌아 뒷집으로 간다. 뒷집은 작은 텃밭 한쪽에 두 평반쯤 되는 닭장이다. 안에는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여섯 마리 등 큰 닭 일곱 마리가 정겹게 살고 있다. 모두 나를 쳐다보더니 소란스레 움직이며 내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밤새 뿌린 비바람에 닭장 뒷벽이 거의 젖어있다. 이놈들 역시 기분이 별로인 것 같다. 가축들도 궂은 날씨는 싫은가보다.

비가 계속 주룩주룩 내린다. 우산을 쓴 채 경황없이 닭 먹이를 넣어주고 거실로 들어왔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한동안 TV를 보다가, 오리 길쯤 떨어진 그라운드골프장 휴게실로 갔다. 벌써 네댓 명이 나와서 떠들고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들고는 오늘의 날씨 얘기를 하는가 싶더니, 금방 또 국내 정치상황과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정치 평론이 시작된다. 정치란 항상 국민의 기대와 비난의 대상인 모양이다.

한참을 놀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 두 시경, 집으로 왔다. 밖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옆집 뒷집 놈들의 안위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뒷집으로 가다가 깜짝 놀랐다. 닭장 안에 있어야 할 닭 일곱 마리가 모두 밖으로 나와 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텃밭에는 상추, 부추, 고구마, 파, 들깨 등이 한창 무성하게 자라면서 푸르름이 가득하였는데, 쪼아 먹고, 짓밟고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찍고 까불며 신나게 뛰놀던 놈들이 나를 보더니 조금 미안한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본다.

지난해 초봄, 병아리로 낯설고 물선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지 일 년 삼 개월, 그동안 우리에만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바깥세상이 그리웠겠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자유를 누린 것 같다. 혹시 울타리 철망에 터진 곳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가만히 이놈들의 탈출 경위를 추적해 본다. 아침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닭장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고 급히 나오면서 닭장 문을 제대로 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열린 문 틈새로 한 마리씩 탈출한 것이다.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탈출하여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뜬금없이 우리 인간들이나 집에서 기르는 모든 가축이 상당부분 구속을 당하며 산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들도 직장이나 일터에서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안에서 맴돌다가 나오니까 개와 닭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일정한 장소에 얽매여 생활하는 것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다.

또 한편으로는 구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하게 된다. 인간도 직장이나 가정이란 틀에서 일부 자유가 속박되며 살아야 나름대로의 행복을 구가할 수 있고, 모든 가축도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꼭 자유를 구속당하는 불편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짐승들로부터 침입을 막아 주는 보호벽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가축 모두 적당한 구속을 당하며 살 때, 그보다 더한 편안함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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