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土地)와 성주의식(城主意識)
토지(土地)와 성주의식(城主意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3.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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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설ㆍ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시사 때 선조의 묘소가 있는 뒷산에 오르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철없는 나를 붙들고 산 아래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을 가리키면서 “저 땅은 어느 부잣집 누구의 땅이고 이쪽 땅은 또 다른 아무개 가문의 누구 땅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때는 철부지로 그 말씀의 뜻도 모른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흘려버렸다.

하지만 차츰 철이 들면서 평생에 많은 땅을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의 여한이 그 말씀 속에 서려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몇 필지의 땅이라도 사서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드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뒷산에 올라 아버지의 옛 모습을 추억하곤 한다.

왜 우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달리 땅에 대한 투자를 극성스럽게 생각하게 될까. 그것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가지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땅에 대한 집착의 이유가 되겠지만 이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다.

우리는 어쨌든 돈이 생기면 우선 땅을 사두기를 원한다. 우리는 긴 세월동안 땅만이 유일한 생활과 생산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살아왔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어릴 때부터 땅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땅 부자가 되기를 바라왔다. 이토록 땅은 우리에게 예나 지금이나 큰 선망의 대상이며 애착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재벌가를 비롯한 연예인 등 돈을 많이 가진 이들이 땅을 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예를 들면 평창 동계올림픽시설 예정부지 인근에 재벌기업이 사전정보를 얻어 매입하는 사례, 고위 공직자와 여야 정치인 등 사회지식층들이 부당하게 토지를 매입하여 인사 청문회 때 혼쭐나는 추한 광경을 연출하는 등 갖가지 부작용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땅은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과점(寡占)하게 됨으로써 땅은 더욱 귀한 존재가 된다. 땅이 귀하기에 그것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치의 땅, 한 뼘의 땅도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예부터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것으로 대장부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였다. 등을 따습게 하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하고, 배가 부르기 위해서는 논밭(田畓)이 있어야 한다. 집을 짓기 위한 대지(大地)도 농사(農事)를 짓기 위한 논밭(田畓)도 전부 땅과 연관이 된다. 땅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이 의식주(衣食住)의 안전이나 그 터전을 얻는데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립(自立)의 바탕이다. 땅을 갖게 됨으로써 자기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조건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하면 땅을 보다 많이 가짐으로써 한 집안이나 논밭의 울타리 속에서 자립된 성주(城主)가 되는 것이다. 그 집을 잘 짓건 못 짓건, 논밭에 어떤 씨를 뿌리건, 또한 거둔 곡식으로 밥을 해먹건 죽을 쑤어 먹건 그것은 성주의 마음이다.

성주는 바로 가부장(家父長)이다. 그는 가정이라는 생활공간 내부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의 안전(安全)과 행복(幸福)을 책임지게 된다. 그런 뜻에서 그는 마치 절대군주(絶對君主)와 같은 존재로서 가정에 군림(君臨)하게 된다. 땅을 가지려는 욕망은 땅이 갖는 생산성이나 절대적인 가치보다도 소유하려는 소유욕(所有慾)이나 땅에 대한 맹목적(盲目的)인 애착(愛着)과 긴밀히 관련된다 하겠다. 우리나라 국민은 땅과 절연(絶緣)해서 생각할 수 없고, 땅에서 태어나 땅과 더불어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는 생의 유전(流轉)을 되풀이한다.

결론적으로 땅(地)은 단순히 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조상을 이어주는 혈연(血緣)이 되고 자기와 고향(故鄕)을 이어주는 지연(地緣)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우리의 과거(過去)와 오늘과 미래(未來)를 이어주는 영원(永遠)한 심연(深淵)의 매개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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