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여성으로만 살아야 하나
여성은 여성으로만 살아야 하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3.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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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란/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
지난 3일 오후, 창원종합운동장 앞 도로를 걷고 있었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경남여성대회’ 거리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선두엔 방송차량, 대형 현수막을 2명의 여성이 양쪽에서 잡고, 여성장애인들이 선두에서 휠체어를 타고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 유독 밝은 표정의 여성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이런 퍼레이드 자체가 어색하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행인들의 눈 때문에 약간은 불편한 걸음을 걷고 있던 터라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는 이 여성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굉장히 즐거워 보이네요?” 하얀 털이 달린 조끼를 입은 그 여성이 연신 웃으며 대답했다. “네. 너무 재밌고 즐거워요” 이런 대답이 아니더라도 그 여성의 몸과 얼굴에서 즐거운 기운이 넘쳐났다. 마침 방송 차량에서는 영화 ‘맘마미아’의 ‘댄싱 퀸’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이 여성이 마치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어 몸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퍼레이드에 몰입해서 스스로 즐기고 있는 그 여성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그리고 멀쩡한 다리로도 이 퍼레이드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위 시선이나 신경 쓰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난 주 화요일, ‘섹슈얼리티의 이해’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을 때다. 여성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와 많은 글을 써 오고 있는 강사의 얘기 중에 한 가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남성들은 ‘노동자 깃발 아래 모여라’고 하면 언제든 하나로 모이고 단결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성도 과연 그러한가요? 아니라면 왜 그럴까요?” 같이 교육에 참여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내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딱히 여성들이 연대나 단결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꼭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상반된 생각들 때문에 그 강사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 강사는 이렇게 얘기했다. “남성들은 자신이 노동자이면, 공장이나 집이나 어디에서건 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삽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어떠한가요? 만약 여성운동 단체의 여성 활동가라면, 집에서도 여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나요? 대부분이 집에선 아내이고 엄마로 살지 않나요?” 맞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은가! 치열하게 직장에서 바쁘게 지내다가도,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개인 OOO로 그때 그때에 맞는 역할로 그 정체성에 맞게 살고 있지 않은가!

 앞의 두 예는 나의 얘기를 통해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여성들의 삶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얘기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비단 여성의 책임이나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느 특정 성(性)의 책임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랜 세월 비주체적으로 살아 온 여성들이, 이제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렇게 길게 돌아서 얘기하였다.

“결박하는 것도 남이 결박하는 것이 아니고, 결박을 푸는 것도 남이 푸는 것이 아니다. 풀거나 결박하는 것이 남이 아니므로 모름지기 스스로 깨달아야 하느니” 소설 ‘난설헌’의 한 부분이다. 앞에서 얘기하였던 밝은 얼굴의 여성이 그렇게 예뻐 보였던 건, 그 여성 스스로가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하건 생물학적인 여성, 사회가 규정한 여성으로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이건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고, 어떤 일을 하며 살더라도 그 일에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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