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세상사가 어지럽다
진주성-세상사가 어지럽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26 18: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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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세상사가 어지럽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들로 시비를 가려야 하거나 사실관계를 밝혀야하는 경우가 있어 해명을 요하는 쪽과 서로 맞서다보면 해명이 필요한 쪽은 버선 속 같이 확 뒤집어서 보일 수가 없어 난감하고 답답할 때가 더러 있다.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변들에게 진실을 보이고 싶지만 보일 방법이 없어서다. 물러서자니 사실이 아닌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다투자니 물적 증거나 입증자료가 없으면 입증방법도 없다. 끝없는 진실공방만이 이어지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시간만 흘려보내며 명명백백한 증거 제시나 사실증명을 하지 못하면 속절없이 관계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의혹에 따른 풍문의 속성이고 여론의 흠결이다. 자의에 의한 충돌이라면 스스로를 부덕의 소치라며 물러섰다가 진실은 밝혀진다는 진리라도 믿고 때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우연이든 계획적이든 타의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면 물러설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필귀정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믿고 자신을 달래보지만 심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정도의 차이 일뿐 피할 길이 없다. 자괴감마저 들어 하늘도 신도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사자와는 맞닥뜨리지 않으면 피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문제라면 회피할 수도 없고 주변의 눈길마저 피할 길이 없다. 서서히 신뢰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명예도 잃게 된다. 협력과 협조의 관계도 상실되고 공감도 공조도 기피한다. 소문은 숙고하지 않고 여론은 재고에 인색하다. 억울함이다. 사사로운 개인문제는 당사자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경위를 분석하고 사실만의 논증으로 원인까지 밝히면 결과와는 관계없이 잘 잘못의 소재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모든 사실은 당사자만이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허위나 거짓으로 꾸미면 다툼이 일어나기마련이다. 계획적인 공격에 의한 충돌이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모함이고 음해이므로 주변으로 알려진다. 추리에서는 필연적인 이론이어야지 우연과의 일치는 용인되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필연만큼이나 우연도 있다.

하지만 고의적인 모함이나 음해에는 필연성을 치밀하게 꿰맞추어 계획했기 때문에 우연보다는 논리적으로 신뢰성이 앞선다. 모순이다. 사실 확인도 안 되고 증인마저 없고 상대방의 양심선언만이 유효한데 그럴 일도 없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만 증언이 없으니 소용이 없어 용인할 수는 없어도 수용은 해야 한다. 압박에 의한 본인수용이고 주변에 의한 묵시적 감수이다. 누명이다. 하지만 감내해야 한다. 진위의 가름을 놓고 작금의 세상사가 어수선하다. 당사자들의 감춰진 양심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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