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대통령 집무실 ‘청와대’ 건립
진주성-대통령 집무실 ‘청와대’ 건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02 18: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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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대통령 집무실 ‘청와대’ 건립


1939년 일제 총독부의 사택으로 지어 2년 2개월만에 준공하여 옛 청와대 건물이 영욕의 52년사(史)를 마감하고 대통령 집무실로 50년 이상된 건물을 쓰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89년 3월 6공(共)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 청와대’ 건물 신축의 답안을 내리게 된 것이다. 새 청와대 건물의 신축을 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 본관은 옛지맥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북악산정(北岳山頂)과 경복궁-광화문 멀리로는 관악산을 잇는 축상에 세워졌다. 본관건물은 정남향의 ㄷ자를 이루고 좌우 별채로 이루어져 있다. 청기와를 올린 팔작지붕 다공포(多拱包) 형식의 처마 현관천장의 녹색 단청 창문살 등 우리 고유 건축 양식을 반영했다. 근정전(勤政殿)의 옛 궁전을 주로 참고 했고 청기와 숫자는 15만여장 본채-별채의 연건평을 2,564평 1층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서편은 문(文) 동편은 무(武)를 상징토록 했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실 등으로 쓰일 서쪽 별채인 대 회의실은 세종실(世宗室)로 150명 수용규모의 대식당인 동쪽별채는 충무실(忠武室)로 명명하고 그 복도에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부조(浮彫)를 걸었다.

중앙홀의 서쪽 벽은 문(文)을 상징하는 조선시대의 행차도를 오른쪽 벽은 무(武)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를 각각 높이 3,19m 길이 21m의 초대형으로 재현했다. 대회의실은 대통령이 좌정할 벽면은 근정전의 일월도(日月圖)를 현대화 하여 장식했고 그 맞은 편인 훈민정음을 월인천강지곡체(月印千江之曲體)로 그려 넣었다. 2층은 대통령 집무공간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동쪽에 51평 크기의 집무실과 22평의 크기의 소집무실, 부속실 등이 있고 중앙 및 서쪽으로 51평 크기의 접견실 확대정상회담 및 신임장 수여 장소로도 쓰일 회의실 가족식당인 백악실(白岳室) 등이 배치돼있다. 건물 앞뜰에는 국빈영접때 의전행사를 할 수 있도록 1480평 크기의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그 주위 도로는 갈색 컬러 아스팔트로 포장했고 뜰 주변에는 무궁화와 소나무 등 심었다. 정림건축이 설계하여 현대건설이 시공한 이 건물 건축에 소요된 경비는 1백37억원이나 투자되었다. 백악이 도성 북쪽에 있는데 평지에 우뚝 뛰어났다. 경복궁이 그 아래 기슭에 있다. 서울 도성이 둘린 여러 산 중에 산이 우뚝 뛰어나니 조선왕조 초에 이 산을 주산으로 삼고 궁궐을 세운 것은 잘된 일이다. 북악은 서울의 중심가를 둘러싸고 있는 4산 가운데 더욱 뛰어 나기에 조선조 초부터 정궁인 경북궁의 주산 몫을 차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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