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항일투사 김정주(金正柱)
진주성-진주 항일투사 김정주(金正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08 19: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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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항일투사 김정주(金正柱)


김정주 선생은 김해 김씨로 경남 진주시 비봉동(상봉동)413번지 출신이며 생년월일은 1915년 10월 6일생이다.
호가 야성(也城). 부친은 김태순(金泰諄)이다.

진주공립보통학교 제 17회(1928년 3월)졸업하고 진주고보에 입학했다.

1929년 7월 2학년 재학 중에 1학년생 강병수. 2학년생 김경룡 등은 설득하고 조선어 작문기관을 설치하기 위하여 장상홍 외 26명의 찬동을 받아 애우회(愛友會)라는 결사 조직을 만들고 수십 차례 회합을 가졌다.

원고를 모집하여 민족주의에 관한 내용이 담긴 황무(荒蕪)라는 제목의 책자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배포하였다.
황무라는 잡지에 김정주 선생의 글도 실렸기 때문에 주모자라 하여 일경에 검거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진주지법 재판 결과는 알 수 없다.

김정주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명치대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 동경 일원에 거주하게 된다.

동경한국학교를 건립할 때 크게 봉사하고 교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거류민단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거류민단 중앙본부 고문을 역임하고 신한학술연구소장으로 학문적으로 일제와 대항하는 일을 진행했다.

재일거류민단 단장(1972년 8월)으로 항일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 <일본의 한국침략사>, <해방 30년사>등을 저작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건설동맹을 창립할 때 적극적으로 물심양면으로 협력하고 일제 강점기 독립 사료집 등을 저술하여 일제의 악랄함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선 분이다.

동경에서 한국사료(史料)연구소를 창설할 때 한국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된 사실을 연구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항일투사이며 애국애족심이 뛰어난 분이지만 국립묘지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는 1982년 국무회의를 거쳐 국민훈장을 수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여 년전 한국을 방문하였고 모교인 진주초등학교와 진주중학교를 방문하였다.

진주고 재학 중 항일투쟁한 기록을 찾아 명예회복이 되었으면 희망하는 바이다.

필자가 쓴 <진주항일운동사>와 또 <진주고 80년사>등에 그날의 항일학생운동의 사실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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