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신비의 돌무덤 구형왕릉
진주성-신비의 돌무덤 구형왕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23 18:21
  • 1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신비의 돌무덤 구형왕릉


화려한 철기문화의 꽃을 피우고 고대일본과 백제 신라의 중계무역으로 낙동강 유역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하였던 가야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구형왕의 무덤이 산청군 금서면 왕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확실한 근거는 찾기 힘들고 무덤의 형태도 여느곳과 다른 이곳은 아직도 그 이름을 확정짓지 못하고 전(傳)구형왕릉이라 이름 불리는 전설속의 유적이다. 그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당시 이 지역이 가야 연맹의 대표성을 가졌던 금관가야의 세력권이 확실하고 여러 고증으로도 가야 왕실의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왕릉의 모습은 마치 작은 피라미드처럼 수많은 천연바위를 단단하게 맞물리게 쌓아 만들었고 중앙으로 용도를 알길없는 작은 감실이 이채롭다.

순장제도와 돌널무덤으로 대표되는 가야양식과도 어울리지 않고 장군총등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과도 차이가 난다.

가야 고분군과 가야국 패망이후 구형왕(仇衡王)이 거처하였던 수정궁에 세워졌다는 덕양전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형왕의 증손자였던 김유신이 무예를 연습하였다는 자리가 남아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가락국(駕洛國) 제10대 구형왕의 돌무덤(石塚) 사적 제214호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어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40cm 내외 높이40cm 내외 길이68cm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있다. 그 앞에 상돌과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 무인석 돌짐승이 1쌍식 배치되어 있으나 이 석물들은 근래의 작품으로 돌무덤과 시대적 차가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31 산음현 산청조와 홍의영(洪儀泳 1750-1815)의 ‘왕산심릉기’에서 이것이 왕름임을 밝혔고 이 산 아래에는 그로부터 서쪽에 있던 왕산사(王山寺)에서 옮겨왔다는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봉안된 재실이 있다. 이 무덤을 구형왕릉이라고 명칭을 붙인 것은 홍의영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 구형왕릉이라고 적혀있다.

또 ‘산청현 유지’에는 정조22년(1798)에 처음으로 이 왕릉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이 왕릉이 처음 나타났다 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다.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옷 활 칼 등 유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1793년 정조17년에(1793) 덕양전을 짓고 봄, 가을로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