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다”
기고-“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28 18:32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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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애/경남문협 회원·진주 배영초교 교사
 

안정애/경남문협 회원·진주 배영초교 교사-“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진주 신안녹지공원 길은 한결 평화로웠다. 이곳은 필자가 마음이 분주할 때 자주 찾는 곳이다. 머릿속을 맑게 하고 여러 가지 구상을 할 수 있어 참 좋은 공간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저 멀리 팔각정 아래 마룻바닥에는 여자 어르신 열다섯 분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다.

“안녕하셔요?” 하고 먼저 인사를 드리니 서너 분의 어르신께서 알아보신다. 사실 거의 매일 나오는데 시간대가 맞는 날은 지난번 보고 처음이다.

여기저기서 반기는 목소리가 더욱 밝았다. 편안한 찢어진 청반바지와 분홍 티셔츠 차림의 나를 보고 오늘은 더욱더 젊은 아가씨처럼 보인다고 칭찬 릴레이가 마구 벌어졌다. 자리 한쪽에 마주 앉아 어르신들의 말동무를 하게 됐다. 시간 여행을 하듯 어르신들의 살아온 호된 시집살이 얘기, 자녀 키운 얘기 안에 들어간다. 무르익은 분위기가 될 무렵, 어르신 한 분이 몸이 불편하다며 드러누우셨다. 그리하여 잠시 뇌 훈련법을 제안해봤다. 모두가 엄지를 굽힌 후 손가락을 접어 숫자 세어보기에 돌입했더니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한다.

다음번 숙제로 남기고 계속 연습을 하게 한 후, 한달음 주차해둔 곳에 가 트렁크 속에서 우쿨렐레를 가져왔다. 그런 다음 노래 부르기 활동으로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게 하니 모두 따라 흥얼거렸다. 아까 드러누우셨던 어르신이 대뜸 자리에 앉더니, 노랫말을 제일 많이 기억하신다.

한창 절정에 달한 노랫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남자 어르신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슬그머니 우리 일행에 합류한다. 이래저래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찢어진 청반바지는 우리는 공짜로 주어도 안 입을 텐데, 요즘은 많이들 입더니 오늘 이 새댁도 그러네” 하시며 말끝을 흐리길래 미소로 응수해주었다. 노래마당은 계속 이어져 어르신들이 유년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목이 터져라 부르니 큰 길에 인접한 주택까지 들렸는지 한 젊은 남자 주인이 창문을 열고 한참을 내려다봤다. 그때 남자 어르신 말씀, “어!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어” 하신다.

우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요청이되 되뇌는 말씀이신 듯했다. 우리가 이러한 곳에서 노래하고 노는데 더 이상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강한 어투였다. 사실 필자가 이러한 분들과 친숙하게 된 지는 7~8여년 전부터다. 주말, 틈새 시간에 자원봉사증을 소지한 후 재능기부 및 나눔 활동 차원에서 봉사를 해온 것이 일상이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단지 이곳은 비공식적인 길거리 공연과도 같았다면, 언급한 곳은 다소 시설이 구비된 곳이라는 점이 차이다. 이렇든 저렇든 구성원은 다 어르신이다. 노년층의 증가로 시원한 곳곳마다 삼삼오오 이러한 분들을 맞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시급한 것이다. 멍하니 하늘만 응시하고 하는 것 없이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소소한 말벗, 이야기 들려주기, 간단한 놀이나 요가, 노래 활동 등을 해줄 수 있는 인적 자원과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주말 토요일 오후 녹지공원에서의 추억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나에겐 사색의 길로만 여기는 공간이지만, 이분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임을 절감했다. 아주 의미 있는 주말 토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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