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2)
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8.29 18:15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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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서부와 임시정부(2)

박내홍(朴來洪)선생은 한의사로 널리 알려진 박준형과 신상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을 목격하고 감동을 받아 일생동안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3·1운동과 더불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자 기원필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키로 하고 기원필의 고향인 전북 남원의 부호들을 찾아 다니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공채증권을 발부하는 등 서울로 왕래하며 활약하였다.

1920년 11월 기원필을 통해 임정에서 발행한 1천원 권 공채증권 1장. 100원 권 공채증권 2장을 우체국을 통해 발송하려다가 우편 검열과정에서 바로 일경에 잡혀 1921년 6월 10일 경성지법에서 소위 제령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게 된다. (동아일보 1921년 6월 22일자)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 까지 항주로 임정을 옮긴 이후에도 공채를 모집했고 1935년 11월부터 1937년 11월 까지 진강으로 피난하면서도 임정 공보를 발행하고 조선민주전선연맹을 결성하였다.

박내홍 선생은 일명 박중래라고 했는데 이는 일제를 유도하고 항일투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임정을 위해 국내에서 계속 활동 중 고등계 형사에게 발각 체포되어 1935년 7월 11일 경성지법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부인 영산 신씨 신상남과 슬하에 장남 박병규를 낳았으나 일찍 죽고 장녀 박기남은 무안군 출신 김금용과 혼인했다.

김금용의 아들 이름이 김성옥(고려대 사학과 졸업, 사라문화 대표)인데 천안시 독립기념관의 임정요인 42인을 실제와 똑같이 만든 밀랍상을 재현시킨 분이다.

김성옥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손숙 연극배우와 부부간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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