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돈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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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03 18:4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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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돈줄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지만,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为天, 民以食为天)”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세종대왕의 실록에도 나오고, 토정 이지함도 그의 상소문에서 이 말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이 말은 시공을 거쳐 지금도 변함없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이 내건 슬로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였다. 걸프전 승리를 바탕으로 안보 이슈를 선점하던 현직 조지 HW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이 슬로건 때문인지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다. 사람이 몸을 가진 존재인 한 ‘배고픔’과 ‘몸의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정치·행정은 처음부터 끝가지 사람의 몸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행정은 밥을 해결하는 경제정책을 실시하여야 하고, 몸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보건정책과 국방정책을 완벽하게 시행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와 ‘안보’ 이 두 개는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의 근본이자 핵심 의무다. 이것에서 실패하면 집권자는 그 자리어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이것에서 실패한 나라의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철리(iron law)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에서 실패하면 높은 지지도 여부에 관계없이 민심은 냉정하게 위정자를 버린다. 이것이 정치·행정가의 근본책무이자 핵심임무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살림살이 빠듯하면 대통령에 대한 호감이 떨어진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완벽한 상관관계는 아니지만 그러한 흐름이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민심의 동향을 알고자 각 종 여론조사들에서는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내지 선호도를 조사한다.

대통령 지지여론조사에 있어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이는 문민정부를 표방하였던 김영삼 대통령이다. 대통령 초기 83%, 2년차 55%, IMF 사태 이후 지지도는 6%로 급락하고, 이후 퇴임 후 급속하게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밥그릇을 담보할 수 있는 일자리와 경제문제는 그처럼 본질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 지지도 81%였다. 별로 뚜렷이 한 것이 없고 그저 상식적인 언행만 하였음에도 그런 지지도가 나타났다. 촛불시위에서 나타났듯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얼마나 극심하였으면 이러한 지지도가 나타났을까하는 씁쓰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8월 넷째주 들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56%로 급락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는 소득주도 성장이고,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이며 주52주 근무시간 때문이라 한다. 물론 이런 개별문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팩트체크의 여지는 없지 않다. 일자리 및 실업률에 대한 것이 심각한 것만은 현실이다.

아울러 서민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는 데, 상위계층은 더욱 부를 증식시켰다. 그 부에 기대어 가난하게 사는 자를 더욱 깔보며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빈부격차의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음을 통계는 말해준다. 마태복음에 있듯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영혼에 대한 비유가 유독 돈과 재물에 똑 맞아떨어지는 것이 기묘한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이상한 아이러니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보수‘라는 말을 선호하는 현상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국가성장발전을 환호하고 긍지에 가득하다. 하지만 국가 성장발전의 과실은 항상 부자들, 돈줄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기득권 세력들이 다 훑어가고,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가상승이라는 실질소득의 박탈현상에 목구멍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그 목구멍은 항상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소리를 쏟아 낸다. ‘이 노무의 나라가 빨갱이 나라가’, ‘세금 막 걷어서 누구 퍼줄라고’, ‘이러다가 나라 절딴 나겄다’ 등등

애국심에 불타는 이런 개탄들은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공중에 떠도는 1,117조라는 어마어마한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있지 않다. 이것을 추려내어 가난한 자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그 ‘돈줄마련’에 대한 비난을 더욱 거세게 한다. 제 밥그릇 제 발로 걷어차면서 늘 배고프다고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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