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4)
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12 18:33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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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서부와 임시정부(4)


홍수원(洪秀瑗)선생은 경남 진주시 평안동 출신으로 임시정부를 도우기 위한 목적으로 혈성(血誠團)을 조직하여 단장으로서 박덕실 등과 함께 김두현, 이근이 등을 통해 군자금을 제공하였고 이부조 등을 상해 3.1공학으로 보내 교육을 받고 귀국하도록 주선했다.

혈성단 구성원은 강우석, 여병섭, 김창욱, 강상은, 김정도, 강성화 등이다. 강우석, 여병섭 선생은 독립운동 공적으로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또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는 박인관, 박승명 등이 중심이 되어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하는 항일결사였다. 이를 모방한 단체가 경남 전도회로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경남전도회는 1919년 11월 상해에서 발행한 대한민보 1500부를 인수하여 각 교회를 통해 배포하였다.

홍수원, 박성애, 김정도, 정성도, 홍수원 등이 모두 검거되었다. 홍수원 선생은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받아 혼절하였다.

홍수원 선생에 대한 재판기록은 신분장지문기록에 기재되어 전해 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1919년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공판이 있었고 1920년 2월 14일 진주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라고 하였다.

경남전도회 사건에 대하여 동아일보 1921년 4월 22일자에 의하면 고운서에 대하여 징역 1년형이 언도되었고 다른 이들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1932년 4월까지 일제가 홍수원의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사건으로 상해 임시정부가 미쳐 챙기지 못한 채 피신하게 되자 일경이 바로 임정 사무실을 급습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이 때 혈성단 존재와 홍수원 단장에 대하여 노출되고 말았다.

일경이 피체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함안으로 도주했으나 일경에 잡혔다.

혹독한 고문을 받을 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치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으나 또 다시 피체되고 말았다.

10여 년간 숨긴 사실과 도주하다 잡힌 것과 더욱더 극심한 고문을 받고 혼절하더니 마침내 1937년 5월 17일 옥중에서 순국. 순절하였다.

1968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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