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함양수동 남계서원(南溪書院)
진주성-함양수동 남계서원(南溪書院)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13 17:5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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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함양수동 남계서원(南溪書院)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586-1번지에 위치한 남계서원은(1552년 명종7 일두(一蠹)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고 1566년(명종21) 남계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남계’는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으로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후에 나촌(羅村)으로 터를 옮겨 1612년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옮겨 중건되었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 서원 해주 문헌서원에 이어 창건된 오래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중의 하나이다. 남계서원이 위치한 함양땅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하여 한양에서 볼 때 낙동강 왼쪽인 안동과 오른쪽인 함양은 모두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내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는 고을이다. 안동이 퇴계이황으로 유명하다면 함양은 남계서원에 모신 정여창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여창은 남계서원에서 서북쪽으로 위치한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 터에 세워진 ‘함양 정병호가옥(정여창 고택)’은 중요 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는데 건물배치 및 외부공간 구성 사랑채 앞 석가산의 조성 등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주거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정여창은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김굉필과 교분이 두터웠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정여창은 김종직 제자로 사림의 한 사람이라 하여 함경도 종성에 유배 그곳에서 생을 마감 그의 호 ‘일두’는 정여창이 스스로를 ‘한마리의 좀’이라는 뜻으로 낮추어서 부르기 위해 지었는데 이는 정이천(程伊川 1033-1107) 중국 북송때 유학자 “천지간에 한 마리 좀에 불과하다”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남계서원은 서원의 제향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영역 뒤쪽에 자리하고 강학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영역 앞쪽에 자리잡은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초기배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1561년 완성된 사당은 강당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강당과 격리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당에는 정여창의 주벽으로 좌우에 정온, 강익의 위패를 모셔져있다. 강당 앞 좌우에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가 서 있다. 송나라때 주돈의 애련설(愛蓮說) 에 영향을 받아 매화와 연꽃을 사랑했다고 한다. 누 이름을 애련현 영매현이라 짓고 연당 주변에 매화를 심고 연당 안에 연꽃을 심을 정도로 이를 반영했다. 서원 문루인 2층 다락에 서원을 바라볼 때 서원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움의 정형화를 추구한 형식으로 조영되어 전체적으로 호방함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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