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히가시노 케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백지의 의미
아침을 열며-히가시노 케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백지의 의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16 18:07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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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히가시노 케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백지의 의미


아내의 권유로 히가시노 케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다. 이 소설이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팔렸고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내심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다. ‘왜 하필 일본 책이야…’ ‘한국의 독자들은 저 일제 36년을 까맣게 잊어버린 건가…’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1/3쯤 지나면서부터 나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국적불문, 이건 명작이라고, 수작이라고, 누구든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인생’에 대한 성찰이 있었고, ‘가치’에 대한 지향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일본인들이 말하는 ‘야사시사’가) 깔려 있었다. 소설적인 수완과 재미는 덤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착상을 했을까.

폐점한 낡은 잡화점이 현재와 과거를 잇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되어 있다. 원래 주인이었던 나미야 유지가 아이들을 상대로 재미삼아 고민상담을 해주던 곳이다. 거기 강도 세명이 (아쓰야, 쇼타, 코헤이가) 숨어들면서 과거로부터 온 불가사의한 편지를 받고 호기심으로 그 편지에 답장을 해주는 이야기다. ‘달나라 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그린 리버’, ‘폴 레논’, ‘길 잃은 강아지’ (본명 ‘키타자와 시즈코’ ‘마쓰오카 카쓰로’ ‘카와베 미도리’ ‘후지카와 히로시[와쿠 코스케]’ ‘무토 하루미’) 다섯명의 상담자의 사연이 주축을 이룬다. 묘하게도 이들은 나미야 잡화점 인근의 고아원 ‘마루코엔’과 얽혀 있다. 대미에서 그 배경이 밝혀진다. 그 고아원의 설립자 미나즈키 아키코와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추리소설로 이름을 날린 히가시노답다. 도중에 몇 번씩이나 울컥하거나 징해지는 장면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소설로서는 이미 성공이다. 하여간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도들이 시차 확인삼아 보낸 백지 편지에 대해 30년 전의 나미야 노인이 정성껏 써보낸 답신이 소개된다. 거기엔 묘한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용은 이렇다.

일부러 백지를 보내신 이유를 노인네 나름으로 숙고해보았습니다. 이건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함부로 회답을 쓸 순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늙어 멍청해져가는 머리에 채찍질을 하며 생각한 결과, 이건 지도가 없다는 의미구나, 해석했습니다.
저에게 고민상담을 해오는 분을 미아에 비유하면, 많은 경우, 지도를 갖고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혹은 자기 위치를 알지 못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당신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거겠지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겁니다. 그러니 목적지를 정할래도 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겠지요.
지도가 백지여서야 당연히 곤란하겠지요. 누구든 어쩔 바를 모를 겁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든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입니다. 모든 게 자유이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자신을 믿고 그 인생을 후회없이 불태우실 것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고민 상담의 회답을 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노인의 인생 마지막 답신이었다. 이 노인네의 이 ‘백지의 철학’이 내게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하기야 인생 자체가 백지에 지도를 그려가는 일이다. 그리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려가는 그 선 하나하나는 그때그때 자신의 실존적 선택이기도 하다. 그 가능성은 정말이지 무한이다. 동으로 갈 수도 서로 갈 수도, 그리고 남으로 갈 수도 북으로 갈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의 어려움이기도 하고 또한 묘미이기도 하다.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소크라테스에게도 로크에게도 하이데거에게도 데리다에게도 그런 백지의 철학이 있었다. 불교의 ‘공’도 일종의 그런 철학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절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속에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다. 백지는 우리 인생의 매 순간, 검은 글씨를, 혹은 검은 선을 기다리고 있다.

자, 오늘 하루 이 빈 시간 속에 나는, 우리는, 우리나라는, 무슨 글자를 쓰고 무슨 지도를 그려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인생을 사는 우리는 보통 갈 바를 잘 모른다. 물어볼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우리 동네에도 ‘나미야 잡화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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