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5)
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5)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9.19 18:33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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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서부와 임시정부(5)


화진선(化進善)선생은 경남 진주시에서 화재식과 인동 장씨의 장남으로 1889년 3월 15일 태어났다.

<진양화씨세보>에 의하면 조선 성종 때 귀화한 경성군 화명신이 원조이며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화섭(化燮)이 중시조로 기록되었다.

영양군 화섭의 후손인 화진선 선생은 3.1운동 때 시위대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큰 감동을 받고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임시정부를 위하여 사천, 산청, 하동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는 등 활동하고 보천교가 독립투쟁의 선봉이라는 말을 듣고 가입하고 각 시·도별 최고 책임자를 모집한다는 말을 따라 경남에서 활동하다 부산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형이 언도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는 지혜를 가졌다고 하며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전해 온다.

1942년 9월 23일 옥고와 고문후유증으로 고행하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만 53세 때 세상을 떠났다.

1921년 대구지법 형사사건부와 집행원부를 필자가 찾아 정부포상을 신청한 결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진주출신 박진수(朴眞守) 선생은 1935년 당시 21세 청년이었다.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 상해로 건너가 김구 선생 등의 추천을 받아 남양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배워 졸업하고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서 중국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되었다.

진주출신 이달(李達) 선생이 1924년경 중국 상해로 건너 갈 때 28세 청년이었다.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하기 위해 신한 농민당에 가입하고 신민부에 들어가 활동했다.

신민부란 1925년 북만주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운동 단체이다.

김좌진 장군의 대한독립군단과 김혁 장군의 대한독립군정서가 각 단체 대표들이 영안현에서 결성한 단체를 말한다.

무장한 500명의 별동대와 보안대를 편성하여 군사부 위원장 겸 총사령 김좌진의 영솔하에 활동을 개시하였고 치안과 농촌계몽 그리고 상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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