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고성 항일투사 허종택(許宗澤)
진주성-고성 항일투사 허종택(許宗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03 18:12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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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고성 항일투사 허종택(許宗澤)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독립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1920년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군자금을 모집하러 찾아 온 허재기, 곽인섭 등에게 종형(從兄)인 종엽(種燁)·종수(鍾洙)·종태(鍾泰) 등과 의논하여 당시의 돈으로 2백 원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독립군자금 모금과 관련 허재기와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옥한 이후에도 변상태(卞相泰)와 협조하여 개천면의 옥천사를 드나들며 제2차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고 있던 승려 신화수(申華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등 민족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한편 사립강습소를 설립하여 미취학자를 가르쳤고, 학교 부지를 희사하는 등 지역의 육영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선행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동아일보 1925년 4월 17일 일기호세대납(一期戶稅代納)
1면(一面) 869명분(名分) 허부자(許富者)의 분발(奮發)

경남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허선(許宣)씨는 마암면 내에서 제일위(第一位)의 부호(富豪)인 바 평소에 공공사업에 많은 진력을 할 뿐 외(外)라 교육계 청년사업에도 다대한 공헌이 있는 중금반에는 대정(大正) 14년 제1기 호세(戶稅)=마암면분(馬岩面分) 총호수 1천여 호 총금 8백여 원중 869호 금액 360원 99전을 독척(獨擲)하고 납부하였는데 군내 제씨는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며 마암면 인사 제씨는 기념지를 건설하자는 여론까지 있다고.(고성)

▲동아일보 1934년 11월 1일 교육기관에 허홍도 씨 기부
경남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허홍도(許洪道) 씨는 종애로 일반에 대한 자선심이 대단히 많던 중 금년도에 이르러 문맹에 부르짖는 고성 각 교육기관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좌기와 같이 금전을 내였다고 한다.
고성읍내 신명유치원 팔십 원, 유흥리(柳興里)간이학교 백원, 구만리공보교 백오십 원

▲동아일보 1935년 12월 15일 시장 부지(敷地)로 천평 무상 대부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는 5백여 호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큰 부락인데 매년 홍수 때 이면 동리 위 하천이 범람하여 주민의 피해가 막대하므로 동면 면장 김윤명(金允明)씨 외유지 제씨의 열렬한 활동으로 금춘에 국고보조를 얻어 수만원의 경비로 동 하천정리 공사가 준공됨을 따라 월 6회로 동 하천변에서 개설되는 시장 위치가 곤란하여 주민의 과반수가 이 시장으로 그날그날의 생활을 근근이 유지하여 오던 바 이것도 또한 막대한 걱정거리가 되어 있으므로 동군 마암면 장산리 허홍도(許洪道)씨가 이에 느낀 바 되어 자기 토지 천여 평 동 시장부지에 무상으로 대부하여 지난9월 10일부로 동 시장 이전 인가가 내려 금월부터 개설하였다는데 일반은 씨의 장거를 칭찬하여 마지않으며 배둔 주민의 생활이 안정되어 동리는 날로 발전의 서광이 비치인다고 한다.(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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