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작은 관심이 이어준 生의 희망
칼럼-작은 관심이 이어준 生의 희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07 18:11
  • 1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작은 관심이 이어준 生의 희망


국화, 코스모스, 백일홍 향취가 골목에 가득하다.

담장 너머에는 석류, 감, 대추가 익어간다.

붉은 옷을 갈아입은 담쟁이덩굴이 콘크리트 벽을 넘어가고 있다

우체국 앞 은행잎들도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세상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사람은 잘 잊히지 않는 몇 가지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한 장면 같은 것이다.

가을이라는 단어는 필자의 옛 추억을 소환하는 전령이다.

2008년 10월경에 20대 여성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필자가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한 여성이 편지를 던져놓고 사라졌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지고 얼굴이 붉는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얼른 물건 값을 치르고 차량에 타서 손 편지를 읽었다.

그녀는 젖먹이 아기 엄마였다.

그해 봄,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 아이를 업고 불안한 듯 경찰서 형사팀 사무실을 기웃거렸다.

휴게실로 안내해서 사연을 물었더니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경찰서 앞에까지 왔다가 돌아가기를 수십 번 했단다.

남편의 잦은 폭행에 얼굴은 피멍이 들었고 몸 전체가 성한 곳이 없다고 했다.

친정으로 도망을 와서 병원 치료 중인데 언제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릴까 겁난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영혼이 파괴되기 직전이라는 말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곧바로 사건을 접수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한 달여 만에 합의가 이루어졌고 사건은 종결됐다.

그렇게 그 사건은 필자의 마음에서 떠났다.

경험한 두려움과 미래의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어둠의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데 도움이 됐다는 진심이 글자마다 녹아 있었다.

그녀는 필자를 언제 만날지 몰라 지갑 속에 편지를 갖고 다닌다고 했다.

5개월 만에 받은 새 희망은 국화꽃 향기처럼 은은한 감동이었다.

우리경찰서 화단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그 나무 위를 가녀린 담쟁이덩굴이 오르고 있다.

넘지 못할 것 같은 벽도 함께 손을 잡으면 방법을 찾고 극복 할 수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온다는 시가 있다.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우리 주변에 갖가지 이유로 마음을 다치거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의 표시 하나가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다.

필자는 범죄수사 업무를 통해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한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 봤다.

가을이다.사람을 사랑하는 관심의 꽃향기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길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