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비에 젖다
진주성-가을비에 젖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09 18:04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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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비에 젖다


가을비가 잦다. 가을비는 일만 보탠다고 했다.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어야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에 훼방을 낳는다. 밤도 줍고 감도 따고 배도 따야하는데 바깥일을 할 수 없어 일손을 놓아야 한다. 콩밭에 띄엄띄엄 서있는 키다리 수수는 산새들새 다 까먹고 죽정이지만, 비에 젖어 머리가 무거워서 고개를 숙였다. 밭이랑의 날머리에는 두어 포기의 해바라기도 따라서 고개를 깊이 숙였는데 미안할 것도 없는 길섶의 코스모스도 덩달아서 고개를 숙였다. 해보자는 듯이 지난여름을 벌겋게 달구던 때에는 소나기 한 줄기 내리지 않더니만 가을걷이를 하려니까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내린다.

논바닥에 물이 괴서 나락타작을 할 콤바인이 들어 갈 수 없어 벼 수확은 한참 늦어지게 되었다. 완숙기에 벼를 베어야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지을 수 있는데 황숙기에 베어낸 쌀은 기름기가 빠져서 밥도 맛이 없다. 나날이 쌀 소비가 줄어들어서 애타는 농민들의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근심을 보탠다. 까짓것 벼 수확 해봤자 돈으로 치면 얼마 된다고 하는 소리나, 쌀 그 까짓것 먹어봐야 얼마 먹는다고 하는 소리를 예사롭게 한다.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큰일 날 소리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주식은 쌀밥이다. 삼시세끼 밥 챙겨먹는다고 삼식이니 밥식이니 하며 구박하지만 집에 있는 밥이 넉넉하니까 외식도 하고 간식을 챙기는 것이지 쌀이 귀하든지 값이 비싸든지 하여 ‘밥배’를 곯는다면 과연 외식과 간식의 여유를 누릴 수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벼가 남아 돌아서 처치곤란이라는 현실은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흔해빠져서 귀하게 여기지도 않으니까 벼들이 병 치례도 하지 않고 해마다 풍년이다. 물벼 저장시설이 모자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한다. 천하면 명이 길고 건강하다고 ‘개똥’이니 ‘바구’니 하며 아이 이름도 천하게 부르고 했듯이 쌀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귀한 집 아들 병치레 잘 하듯이 육칠십년대의 쌀이 귀할 때는 농민들이 농약통을 내려놓을 여가가 없을 정도로 벼들이 온갖 잔병치레까지 하며 까탈을 꽤나 부렸다. 쌀을 시장에 내다팔러 가면서도 ‘쌀사러간다’고 하며 귀하신 몸의 행차를 환송까지 하니까 교태깨나 부리면서 갑질 행세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모판에다 제물차려 용신제 지내고 모심기는 동네잔치고 나락타작은 흥 타작이고 햅쌀밥 처음 짓는 날이면 ‘처미’ 한다며 이웃사람 불러다 함께 먹었다.

쌀이 상팔자였던 때다. 요즘은 반전이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갈등까지 일고 있다. 고육지책이 ‘추곡수매’이다. 수요를 늘인다는 것은 인위적으로는 안 된다. 활용도를 늘리는 방법을 적극 찾아야 한다. 우리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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