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율의 詩 산책-울음을 참고 있는 너의 성대는 커다랗다
김지율의 詩 산책-울음을 참고 있는 너의 성대는 커다랗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14 18:30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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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울음을 참고 있는 너의 성대는 커다랗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똬리 튼 뱀만큼 커다랗다/ 찌그러져 일렁대는/ 목그늘을 보지 못하는 그만이/ 울지 않았다고 웃음을 띠고 있다//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 똬리를 틀고 겨울잠을 자는 뱀만큼 커다랗다/ 이대로 커진다면/ 곧 성대 위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그는 자신에게 ‘안녕?’/ 인사도 참고 있는 게 틀림없다/ 미소와 웃음의 종류가 그의 인생의 메뉴//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오래 참는 것이/ 크게 울어버린 것이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건/ 갈라진 뱀의 혀를 깁는 것보다 위험한 일/ 무엇을 그는 버려야/ 그를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꼬챙이에 찔려 죽은 줄도 모르고 /겨울잠 자는 뱀의 꿈처럼 커다랗다/ 그뿐이다/ 울음을 참지 않았다고 외치는/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랄 뿐이다 (김경후, 코르크)

늘 참는 사람이 있다. 잘 참는 사람은 늘 잘 참고,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참지 못한다. 화를 참고, 오해를 참고,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사람. 누구도 그가 참고 있다는 것에 관심이 없고 그런 상황을 염려하지도 않는다.

시인은 말한다. ‘울음을 오래 참은 사람의 성대는 커다랗다’고. 울음을 오래 참아 성대가 커다란 한 사람이 있다. 똬리를 튼 뱀만큼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울 만큼 성대가 큰 한 사람이 있다. 삼키고 삼켜 성대까지 치솟아 오른 울음. 그 울음을 다시 삼키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울음을 견디고, 불안을 견디고, 하고 싶은 말을 견디며 그것을 꾹 누르고 있는 사람. 시인이 시의 제목을 ‘코르크’라고 했듯이.

금방 좋아졌다 싫증내는 사람, 금방 화를 냈다가 푸는 사람, 먼저 오해하고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왜 참고만 있어? 바보같이. 참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늘 참지 않는다. 그래서 늘 참는 사람은 자신이 아프다.

시인은 말하고 또 말한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고. 꼬챙이에 찔려 죽은 줄도 모르고 긴 겨울잠을 자는 뱀의 꿈처럼 커다란 성대를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시인 자신이겠지만 그는 고백한다. 자신을 닮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오래 참는 것이 크게 울어버린 것’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라고. 미처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알았을 때 울컥 치솟는 슬픔이란.

자신에게 하는 ‘안녕?’이라는 인사도 참고 있는 사람. 천성일 수도 환경일 수도 있지만 참는 사람은 그냥 참는다. 정말 슬픈 사람은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대체로 이 시인의 시들은 깊이 견딘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내면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어둠 속에 오래 견디고 앉아 있어 본 사람은 대낮의 햇살에서도 영혼을 느낀다는, 그런 사람의 작품과 그 깊이는 곧 ‘인간 이해’의 깊이라고. 오늘은 그 말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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