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골프와 화(火)
아침을 열며-골프와 화(火)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15 18:3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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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열/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박익열/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골프와 화(火)


10월 중순임에도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아니 추워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평년에 비해서 20일 정도 빨리 서리가 내렸다고 하고, 주변엔 가을 단풍도 이미 시작이 되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필드(field: 골프장)를 다녀왔다. 너무나 환상적인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 사방에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면서,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을 정도의 선선함 속에서 느긋하고 상큼한 한때를 보냈다. 정말 골퍼(golfer)에게는 봄과 가을 동안 즐기는 골프는 신(神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남을 배려해주는 멋진 동반자라도 만나고, 페어웨이(fairway: 잘 다듬어진 잔디)가 정성스럽게 관리되어 작은 디봇(divot: 골프 클럽에 의해 잔디가 뜯겨나간 자국)조차 없는 장소를 만나면 최상의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계절이 골프 계절인 만큼 골프 연습장은 연일 만원(滿員)이다. 특히, 퇴근 후에 연습장에 들리면 평균 20~30분은 기다려야 연습 타석을 배정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타석을 배정 받자마자 준비운동으로 몸을 푸는 과정도 없이 잔뜩 화(火)가 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골프공(ball)을 두드려 패기 시작한다. 만약 골프공이 사물(事物)이 아니고 살아있는 생물(生物)이라고 생각하면 골프공의 입장에서 기분이 어떨지 한번쯤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타석에 놓여있는 골프공의 입장이라면 나를 준비도, 배려도, 생각도, 그리고 의논도 없이 골프채로 두드려 패기만 하는데 기분 좋게 스윗스팟(sweet spot: 타면의 정중앙)에 맞아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반대로 화난듯한 표정과 자세가 아니라 다정스럽게 골프공을 대한다면 골프공은 여기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부드럽게 맞아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름답게 날아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농사’와 ‘골프’라고 농담한다. 그런 정도로 골프라는 운동은 참 어렵고 심오(深奧)하여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운동이다. 게다가 화까지 더해져 이성을 잃고 흥분된 상태에서 잘 되는 골프는 절대 없다. 화는 화를 더욱 부추겨 경기가 끝난 후 받아 쥐는 스코어카드에는 자신의 후회스러움, 골프 코스와 캐디(caddie: 경기 도우미)에 대한 원망 그리고 동반자들에 대한 창피함과 미안함만 남는다. 게다가 구겨지고 패대기쳐진 자존심과 비워진 지갑을 보면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이렇듯 화는 화를 불러서 결국에는 골프 가방을 던져버린다. “이까짓 골프가 뭐라고”, “땀도 안나고 운동했다는 기분도 들지 않고, 운동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제발 오늘부터라도 생각을 고쳐먹자. 골프를 조금이라도 쉽게 치고 재미있게 쳐서 행복해지려면 말이다. 골프는 정적(靜的)인 운동이다. 이 정적인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감이다. 오죽하면 골프는 멘탈(mental: 정신) 경기라고 하겠는가? 심지어 멘탈 90%, 스윙 10%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멘탈인데 어떻게 연습장이나 필드에서 화를 품고서 만족한 경기를 할 수 있겠는가? 특히, 공이 잘 맞지 않을 때나 실수를 했을 때 화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반자들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인 상태에서도 잘 맞지 않는 공이 화난 상태에서는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마련이다.

골프가 아무리 어려운 운동일지라도 마음을 비우고, 실수에 관대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언젠가는 골프가 주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 행복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이는 골프채를 들고서 필드에 나가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끼고, 어떤 이는 100타를 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골프라는 운동은 우리가 알 듯 모를 듯한 마력(魔力)을 지닌 가장 정적이고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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