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맞이
진주성-가을맞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16 18:29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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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맞이

유별났던 지난여름의 폭염과 폭우를 견뎌내며 애타게 가을을 기다리다 목이 가늘어진 코스모스가 이제는 긴 한숨을 돌리고 시름겹던 흔적을 지우며 청순한 자태로 하늘거리는 가을의 초입이다.

길섶에 버려진 듯 이름 모를 잡초와 산야의 초목도 제몫을 다하기 위해 가을을 준비하느라고 소리 없이 바지런을 떨며 제마다의 색깔로 단장하고 있어 산야의 빛깔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머잖은 날에 동토의 세계를 향해 먼 길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서글퍼하거나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고 서두름도 없이 가만가만히 밤이슬에 젖으면서 곱디곱게 단장을 하고, 햇살가득하게 따스한 한낮에는 알알이 다음세대를 이을 씨앗을 옹골차게 익힌다. 바윗돌을 녹일 뜻한 뙤약볕 아래서도 물러서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몸서리치는 폭풍우의 시달림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가뭄에 목말라 하면도 포기하지 않았다. 환희의 꼬리도 잡아보지 못한 삶은 시련과 고난이었고 역경과 수난이었으며 설움과 고통이었지만 순응과 저항을 조화롭게 반복하며 원한의 날을 세우지는 않았다. 처연한 자태와 고고한 기품이 참으로 부럽다. 아무리 바동거려도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했던 우리의 일상이 부끄럽다.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하여 풀썩 주저앉고 싶은 때가 몇 번이었던가. 마디마다 상처였고 굽이굽이 고난이었다. 아슬아슬한 살얼음판도 걸었고 백척간두의 절망과도 맞닥뜨렸다. 그래도 용케 오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있고 마주보는 사람이 있고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어 우리라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어주었기에 서로를 달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손을 맞잡을 수 있어서 또 한 해의 가을을 맞이한다.

삼라만상이 순환을 거듭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만 인간만은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앞선 사람이 있어 따르고, 따르는 사람이 있어 앞서면서 오로지 개척의 길로만 이어져 간다.

앞서지 않으려면 따라야하고 따르지 않으려면 앞서야하는 양자택일의 절박감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느냐 찾지 못하느냐가 삶의 행불행을 가른다.

봄꽃은 나름대로 화려하게 피어야하고 여름의 잎은 마음껏 푸르러야하며 가을의 열매는 옹골차게 여물어야하는 까닭이 초목들의 삶의 가치라면, 사람은 어려서 꿈꾸고 젊어서 일구고 늙어서 베푸는 것이 삶의 가치이다. 삶의 가치를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때를 맞추어 제몫을 다할 때 갖게 되는 즐거움이다.

개미 쳇바퀴 돌듯 한 일상이 지겨워서 멈추고 싶고, 때로는 일탈을 꿈꾸어보지만 용기인지 만용인지 뒤끝의 결과는 냉정하게 가름난다. 짙푸른 잎이 샛노랗게 물들어가고 아람이 벌어지고 감들이 볼을 붉히며 들녘의 벼는 노랗게 고개를 숙였다. 더 넓은 가슴으로 가을맞이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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