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묘비명(墓碑銘)
진주성-묘비명(墓碑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0.25 18:4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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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묘비명(墓碑銘)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에 죽은 사람의 신분인, 성명, 출생, 행적, 사망의 일자, 위치명 등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묘석 또는 무덤돌이라 한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계상서당(溪上書堂)에서 운명전에 훈계(訓戒)한 내용 중 자명(自銘)을 다음과 같이 남기셨다.
“생이대치(生而大癡) 장이다질(壯而多疾)… 승화귀진(乘化歸盡) 복화구혜(複柯求兮)”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고 커가면서 병통도 많았구나… 조화타고 다함으로 돌아가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랴 예안현 도산면 상계동 뒷산에 묘소를 조성하고 남기신 분부대로 크지 않은 자연석에 새겨 묘비가 세워졌고 5일장으로 거행했다.

율곡이 40세 되던해에 퇴계가 돌아가셨다. 율곡(이이)은 제문을 4자68행으로 아주 유명한 문장이다. 한문으로 외우면 또 다른 맛이 있고 한문 문리를 트는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왕족과 양반 묘지명이 많다. 영조(1724-1776)가 사도세자를 위해 쓴 묘지명도 있다. “끝내는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던 말인가” 아들을 죽인 자신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자책하는 심정도 읽을 수 있다.

김광규의 시 묘비명은 유명 문인이 거짓말로 쓴 권력자의 묘비를 비아냥 거렸다. “이 묘비는 살아 남아 /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묘비명에 남긴 권력과 재산을 얻으려고 탐욕에 빠지기 쉬운게 인생이다. 지도층 일수록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묘지명을 미리 써놓고 평생 실천하다가 떠나는건 어떨까. 묘비명이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 이제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조병화(1921-2003)시인은 어머니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간다고 노래했던 것이 2003년 시인이 세상을 뜨자 묘소에 묘지명 시비가 세워졌다. 소파 방정환(1899-1932) 선생은 어린이날을 만들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았다. 어린이라고 불리게 된것도 그분 덕택이다.

33세에 돌아가신 방정환 선생님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은 어린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무덤의 형태가 바뀌어 누구의 묘인지 알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묘지명을 만들어 묘지 속에 넣어두었다. 장방형으로 만든 2개의 돌에 한 개의 돌(銘)은 좌우명이나 공적을 새긴 글이고 다른 한 개(誌)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죽은 날짜 무덤의 좌향 등 적어서 전(傳)과 시(詩)와 같았다. 백비(白碑)로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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