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나만주의’와 ‘너도주의’
아침을 열며-‘나만주의’와 ‘너도주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19 18:21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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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나만주의’와 ‘너도주의’


점심시간에 학교 뒷문을 나가 호젓한 개천길을 걸으며 동료교수 A, B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예쁜 길에 무수한 자동차들이 도로 양옆에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위압적인 거대 트럭도 여럿 있었다. 물론 불법주차였다. 주차금지 표지판은 있으나 마나였다. 원래 그 길은 3차로에 해당하지만 양옆이 불법주차 차량들로 점령당해 있으니 꼼짝없이 1차로가 되고 말았다. 멀리서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전국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다. 나만 편하면 그만, 다른 사람의 사정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만연돼 있다.
“이것도 ‘나만주의’네요. 이런 게 안 없어지면 우린 영원히 선진국이 못 될 거예요” 무심코 평소생각을 한마디 내뱉었더니 “‘나만주의’요? 그거 재밌는 말이네요” 하고 동료교수 A가 웃었다.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삶의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이 나만주의가 발견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게 결국은 우리 모두와 국가 사회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나만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저 ‘이기주의’와도 구별된다. 그보다 더 저질적이고 악질적이다. 이기주의는 자기의 욕망에 충실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속하는 것이니 일정 부분 인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만주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장-처지-사정-이익 등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원천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이다. 그게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이 나만주의의 변형으로 ‘나먼저주의’도 있다. 끼어들기-새치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얌체주의’와도 겹쳐진다. 나먼저 하고 나먼저 가고 그래서 나만 좋으면 그만, 다른 사람은 아예 안중에 없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그래서 결국 모두가 불편해지고 불쾌해지고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나먼저’가 결국 ‘나나중’을 유발한다. 짜증이 나고 위기를 느끼고 손해를 의식한다. 그래서 또 ‘나먼저’가 작동한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시작이 ‘너도주의’다. 이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입장-사정-이익 등에 대한 고려 내지 배려다. 그래서 이건 원천적으로 윤리적이다. (거창한 ‘이타주의’보다 구체적이라 더 실천적이고 현실적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 ‘역지사지’도 이에 해당한다. 나는 그 극단의 형태를 ‘빙의’라는 철학적 용어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너도주의는 실은 우리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저 유명한 예수의 말,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도 그리고 공자의 말, “네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도 바로 이 너도주의의 전형이었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이른바 ‘아타(我他)이분법’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 극복을 역설한 현대 프랑스철학도 이 너도주의에 그 뿌리를 박은 혹은 그에 기반한 철학이었다. 문명과 야만,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 그 이분법에 의해 구별되고 차별되는 ‘나’ 아닌 ‘너’에 대한 시선, 그 따뜻한 시선이 바로 레비스트로스와 푸코와 데리다의 철학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도 철학자의 자격으로 우리사회의 모든 ‘나만이스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가슴속에는 과연 ‘나’ 아닌 ‘남’(人/他)이라는 글자가 있기나 한가? 당신의 그 한 순간의 만족과 이익이 실은 얼마나 많은 선량한 ‘너도이스트’들의 불쾌와 손해와 양보 위에서 성립된 것임을 당신은 생각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삶의 매순간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 그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알려준 삶의 진리였다. 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선택지를 들이밀고 싶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 되려는가. ‘나만주의’인가 ‘너도주의’인가. 그것이 당신과 ‘너인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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