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율의 詩 산책-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일 뿐
김지율의 詩 산책-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일 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25 18:57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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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일 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도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일찌기 나는’ 전문 )

1980년대를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시인 최승자. 그의 시는 근원 상실의 세계와 자본주의적 질서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부정의 언어이자 고통의 신음소리다. 세 평짜리 고시원과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정신분열증으로, 불면의 시간들을 보내며 죽음 직전까지 갔던 시인. 포항의료원에서도 겨우 30킬로가 넘는 몸으로 좁은 병실에서 여전히 시만 붙들고 있었던 시인. 이 시는 첫 시집 ‘이 時代의 사랑’에 실린 첫 시다. 80년대를 살아가는 혹은 살아내야만 했던 상처와 치욕 그리고 죽음을 끝까지 밀고 나간 ‘최승자’라는 이름은 1980년대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여전히 시인의 보통 명사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은 상처 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더 믿는다. 오랫동안 마음을 病中이게 한 것도 시였지만, 그 病席에서 일어나게 한 것도 시라는 믿음. 그러므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한 행은 시인이 쓴 단 한 줄의 유서일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적 자아는 거침없이 폭로하고 과감하게 절망한다. 이것은 그의 삶이 근거하는 인식의 저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일 터다.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 부모’도 키워주지 않았다는 것. ‘일찌기’ 나는 ‘마른 빵에 핀 곰팡이’이며, ‘구더기가 뒤덮인 천 년 전의 죽은 시체’였다는 것. 그러니 잠시 스쳐 지나가는 ‘너당신그대, 행복’ 그리고 ‘너, 당신, 그대, 사랑’들은 이런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마시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삼십세’) 없는 지독한 비극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부정이 언제나 그의 시에는 번뜩인다.

시인의 말처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듯 우리의 삶 또한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 ‘루머’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증인도 나의 증인도 될 수 없다. ‘개 같은 가을이/ 매독 같은 가을이’(‘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와 격렬하게 몸과 마음을 흔든다. 시대가 감당할 수 없었던 삶과 존재의 가치에 절망적으로 호소하며 한 편의 시를 생존하듯 쓴 시인의 혹독함에 우리는 모두 빚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말하는 그의 근황에 조차도. “생각해 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 그 죄와 그 업 때문에 지금 살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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