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1운동 100주년을 기다리며
칼럼-3·1운동 100주년을 기다리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26 18:31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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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원/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차수원/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3·1운동 100주년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이 하나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복을 기원했으며, 오직 광복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신분의 귀천, 종교의 차이, 이념의 대립도 하나 없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3·1운동이 100년이 되는 가슴 벅찬 한 해가 다가오면서 3·1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3·1운동의 아이콘이자 국민누나 유관순 열사는 친숙한 반면 정작 우리 지역에 어떤 3·1운동이 일어났는지, 독립운동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호국충절의 고장인 경남 진주에서는 그 당시 사회적 위치가 보잘 것 없었던 걸인과 기생이 만세운동을 펼쳤다. <진주시사>와 <내고장전통>에 따르면 기미년 3월 18일 진주의 걸인 100여명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의분에 넘친 목소리로 “우리들이 빌어먹는 것도 왜놈들이 재산과 인권을 빼앗아간 때문이며 나라가 독립하지 못하여 우리는 물론 이천만의 동포가 모두 빈곤의 구렁에 빠져 거리가 된 것이다”라고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고 되어 있다.

또 다음날(3월 19일) 오전에는 진주권번(기생조합) 소속기생 50여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남강변을 돌아 촉석루까지 행진하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자리에서 칼에 맞아 죽어도 나라가 독립되면 여한이 없겠다”고 외쳤고, 기생 ‘김향화’ 등 5~6명이 경찰에 붙잡혀 옥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걸인기생독립만세운동은 천대를 받아왔던 걸인과 기생들이 목숨을 내걸고 독립만세운동을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며, 매년 3월 18일이 되면 만세재현행사 더불어 횃불 시가행진을 하며 진주 3·1만세의거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경남 사천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21일, 사천초등 전신인 사천공립보통학교 졸업식 직후 기념행사로 열린 축구대회에서 졸업생과 재학생 등 200여명이 가슴에 몰래 품고 있던 태극기를 일제히 꺼내 높이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축구시합을 했는데, 시합에서 승리한 이윤조가 갑자기 가슴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독립만세 함성에 놀라 뛰어나온 일본인 교장은 교직원을 급히 호출하면서 이윤조를 잡으려 했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고장 각 시군에서도 3·1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행사들이 개최될 예정이다. 3·1절 기념 건강달리기 대회, 걸인·기생독립만세재현행사,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재현 축구대회 등 그날의 의미를 기리는 각종 재현행사 등이 계획되어 있다.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 되며,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지금은 한민족이 하나가 되어 일어난 3·1운동을 되돌아보고 일제강점기라는 긴 겨울의 터널의 끝에서 조국의 봄을 되찾기 위해 일제의 총칼에 맞서 싸웠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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