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성지
진주성-진주성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27 18:28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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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진주성지


진주는 유장한 역사의 흐름을 오늘에 이어오고 있는 천년고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천년고도라며 내세울 그 유적이 없어 안타깝다.

진주성 바깥으로의 진주관아와 연지사 그리고 용두머리 나루터와 천연해자 대사지인 연지도 흔적조차 남김 없고 복원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성벽이 복구되고 포정사의 문루와 북장대와 서장대가 옛 내음을 머금었고 호국사가 중창되어 범종소리 이어지고 촉석루가 복원되고 창렬사가 다시 섰다. 폐허의 성지에는 순국영령 불망비만 통한의 역사를 품고 오백년의 옛 세월을 지키고 섰다. 오순도순 살아가던 안성사람들도 정비사업으로 마을이 헐리어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론가 떠나갔다. 진주성 안팎이 천지개벽을 했다. 동헌객사 관아 터엔 마천루가 빼곡하고, 몰밤 건져 술을 빚고 묵을 쑤던 연지는 포석조차 남김 없고, 연지사 범종은 원한 맺힌 여운만을 통절히 남겨놓고 왜국으로 끌려가서 고국산천 그리면서 기약 없는 귀환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불전모아 병창 짓고 공양미로 군량하며 의승군의 결사항전 순고하고 거룩하여 조선조 19대왕 숙종은 이를 찬양하여 내성사를 개명하여 호국사라 사액을 내렸으니 세인인들 어찌 숭배함에 인색하겠는가.

임란당시의 호국사의 원래 이름이 ‘월영산 내성사’이다. 천연요새의 반월형 진주성지는 월영산이다. 어느 교수는 진주 모 일간지에다 이름이 없는 산이라고 생뚱맞게 괴변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면 월영산이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시민이 많다는 것이 짐작된다.

역사의 유적은 나아갈 바를 깨우쳐주는 교육의 현장이다. 천년고도 진주라고 말로만 떠들면 뭐하나. 임란 삼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현장을 머물면서 기리게 해야 한다.

석성을 둘러친 초가마을이 전부인 낙안읍성은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진주성 안을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임란당시의 생활상이라도 재현을 하여, 안성에도 옛 사람 불러다가 흰옷 입혀 살게 하고, 병기창 대장간에 쇠메소리 장단 맞춰 진주검무 춤사위로 가는 객을 잡아두고, 군막도 세워서 창검술도 시연하고, 진주탁배기 주막집에 육회 얹은 비빔밥을 박바가지 아니라도 비벼먹고 즐기면서, 남강에 달 띄워놓고 달그림자 밟으면서 월영산 거닌다면 진주라 천리 길을 어찌 쉬이 잊겠는가. 천년역사가 잠들어있던 외성의 석벽 일부를 찾았는데 이제는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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