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2)
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1.28 18:5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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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2)

화산 이씨 종친(宗親)들과 장손(長孫)이 1995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당서기와 정부 관계자들과 수천 명의 군중이 공항으로 나와 환대하고 왕손으로 인정하는 행사를 했고 해마다 3월 15일에는 대대적 행사를 진행한다.

국내 후손으로 브릿지 증권 사장(2004년) 골든 브릿지 증권 회장(2018년)이상준씨가 있다.

정선 이씨도 베트남에서 유래된 성씨로 다문화 가족이다.

정선 이씨의 시조 이양혼(李陽棍)은 베트남 리(李)왕조 인종 이건덕(재위 56년간)의 셋째 아들이다.

제 5대 신종 황제와 아우가 서로 왕위를 다투다가 북송(北宋)으로 망명하였고 송나라 문하시중(門下侍中) 진씨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북송이 망하고 남송(南宋)으로 전환되어 남으로 수도를 옮기자 서기 1127년에 고려국 경주(慶州)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양혼의 9세손 이우원(李遇元)은 국자생원으로 좌복야(左僕射)에 추봉되었고 강원도(江原道) 정선(旌善)으로 이주(移住)해 후손이 정선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이양혼의 2세손 이란. 이군욱은 예의판서를 지내고 6세손 이의민(李義旼)은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종형 이희민(李羲旼)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어 권세를 펼쳤다.

정중부(鄭仲夫)가 경대승(慶大升)에 의해 죽고 경대승은 5년 만에 병사(病死)하자 이의민(李義旼)이 정권(政權)을 잡고 의종을 죽이고 명종(明宗)을 세우고 14년간 고려국(高麗國)를 통치했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인근의 왕회 마을에는 낌(金)씨 성을 가진 자손(子孫)들이 대거 살고 있다.

그들의 조상(祖上)들이 청나라 군대를 따라 왔던 조선인(朝鮮人)의 후예(後裔)라고 말하고 있다.

18세기 레왕조를 무너뜨린 떠이신 출신 삼형제의 반란군(叛亂軍)을 진압(鎭壓)할 목적으로 청나라 팔기군 20만 명이 출정(出征)하게 된다.

청나라 팔기군(八旗軍)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군병이 함께 참전(參戰)하였고 전쟁(戰爭)이 끝난 후 청나라 또는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트남 여성과 혼인(婚姻)해 정착(定着)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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