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첫 손 꼽히는 약초꾼
지리산 첫 손 꼽히는 약초꾼
  • 김봉철 기자/ 사진 이용규 기자
  • 승인 2012.04.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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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오봉마을 토착민 민대호 선생

▲ 지리산에서 최고가는 약초꾼 민대호 선생.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가면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추모공원이 있다.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은 우리 국군이 산청-함양 705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1996년 이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에 근거해 추모공원이 조성돼 2004년 완성되었다. 산청-함양 사건 추모공원은 이렇게 해서 지금의 방곡마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이 추모공원에서 지리산 둘레길 5구간이 시작된다. 둘레길 5구간은 함양 동강(점촌마을)에서 산청 수철까지의 12km 구간이다. 둘레길 5구간을 걷는 사람들은 보통 추모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추모공원 바로 앞에 있는 방곡마을 약초꾼 김선광씨 집을 통과해 개울을 건너 상사폭포를 지나 고동재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수철마을에 이르게 된다.

◆오봉마을…지리산 오지중의 오지

지리산에서 최고가는 약초꾼 민대호 선생(52)이 살고 있는 오봉마을은 산청-함양사건이 난 방곡마을, 가현마을에서 골짜기를 4km 정도 더 올라가야 나올 정도로 오지중의 오지이다. 오봉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추모공원이 있는 방곡마을에서 길을 따라 오봉골짜기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오봉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계곡을 중간 중간 막고 있는 모습들이 나오는 데 이 계곡이 오봉계곡이다. 오봉계곡은 한 겨울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많다. 계곡이 워낙 깊어서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이 계곡을 따라 시멘트 길이 나 있는 데 지난 여름의 폭우로 인해 길이 끊어진 곳이 많다. 계곡의 끝자락이 오봉마을인데 사람살기에 가장 좋다는 해발 600m이다. 5개의 봉오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서 오봉마을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 60호의 집이 있는데 대부분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눌러 살게 된 집들이다. 오봉마을 토착민은 약초꾼 민대호 선생을 비롯 3~4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외지인들이 여기에 들어와 살게 된 것도 약초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이 병을 얻어 요양하러 왔다가 병이 나은 후에도 마을이 좋아서 그대로 눌러 살게 된 사람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약초를 재배하거나 유기농 채소등을 재배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리산 약초꾼 민대호 선생은 오봉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여기서 살고 있다. 젊었을 때 잠시 부산에서 전자제품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을 했는데  폐병이 생겼다. 병이 생기자 그는 만사를 그만두고 오봉마을 산속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병도 병원에서 나은 것이 아니라 지리산 약초와 민간요법을 통해서 나았다고 한다.
“오소리 기름을 내고 도라지, 작약, 잔대등 열 댓가지 약재와 꿀을 넣고 푹 다려서 두 솥 먹으니까 낫더라구요. 그게 양으로 따지면 한말은 될 겁니다. 여기서 폐병이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먹고 많이 나았어요”

▲ 지리산약초학교에서 강의중인 민대호 선생.

◆젊은시절 병얻어 산으로 다시 돌아와

산에 돌아와 병이 낫고 나니 지리산 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민대호 선생은 산을 타면 하루에 보통 40km는 움직인다. 평지를 걸어도 하루에 40km를 걷기가 쉽지 않은데 지리산을 약초를 캐면서 40km를 다닌다는 것은 다람쥐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민 선생은 지리산을 내 앞마당처럼 누비고 다닌다. 민 선생의 오두막에 가면 산작약, 세신, 지취, 봉삼, 오미자, 산도라지, 돌배, 세발당귀, 능이버섯, 표고버섯등 지리산에 캔 야생약초들이 즐비하다. 세발당귀는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것인데 피를 맑게 하는데 약효가 뛰어나다. 주로 지리산 1500m 이상에서 자라, 일반인들이 채취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약초는 캐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뿌리를 쓰는 것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서 봄까지 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잎을 약으로 쓰는 것은 잎에 영양이 가장 많은 여름에 채집한 것이 좋구요. 물론 열매를 약으로 쓰는 것은 가을이 좋습니다. 이처럼 약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채취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일년 내내 쉴 날이 없어요.”
민 선생은 주로 봄에는 더덕, 초오, 잔대를 캐고 가을에는 백작약과 강활, 독활을 캐고 오미자를 딴다고 한다. 그런데 민 선생이 지리산 약초 중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백작약이다.

“백작약은 식중독 걸렸을 때 다려서 먹으면 좋아요. 백작약은 일반 작약과 달라서 꽃이 희고 약효도 더 좋습니다. 백작약은 해발 700m 이상 고지에서 자라는 데, 칠년 이상 자라면 뿌리 한줄기가 보약 한 첩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효가 좋습니다” 지리산에 전해오는 민간요법에서는 백작약으로 기관지염을 고치는 데 많이 사용합니다. 기관지염으로 목이 쉬거나 할 때 백작약 뿌리를 삶아 먹으면 잘 낫는다고 합니다. 백작약은 산작약이라고도 하는 데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것이 특히 약효가 좋습니다.
“지리산 자라는 약초는 다른데서 자라는 거는 품종이 같아도 약효가 달라요. 요즈음 나오는 고로쇠 물도 저 아래에서 나는 거하고 우리 오봉마을 것 하고는 맛이 달라요” 민대호 선생은 지리산 약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자꾸만 지리산 야생 약초가 사라지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많다. 등산객들이 “어디에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떼로 몰려와서 약초를 남획해 가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리산 야생약초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약초꾼들은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요. 약초를 캐도 절대로 다 캐지 않아요. 어린 것이 자라서 계속 군락지를 이루도록 보호하는 것이지요. 또 씨를 심어두어서 다음에 캘 수 있도록 해요. 이렇게 해야 지리산 약초가 제대로 유지될 수가 있어요.”

◆지리산 약초에 대한 자부심 대단

일반인들은 약초 군락지를 발견하면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뿌리까지 씨를 말려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민 선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약초 군락지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한번 가르쳐 줘 놓으면 친구들까지 데려와 약초군락지를 다 망쳐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리산 약초꾼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민 선생에게 약초를 부탁하는 사람, 함께 채취하러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민 선생은 이들과 함께 약초를 캐러 가 본 적도 없다고 한다.
“평생 지리산을 올랐기 때문에 어떤 약초가 어디 골짜기에 있는지 다 알아요. 머리에 지리산 약초지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러나 이곳들 중 한 곳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일반인들에게 한번 가르쳐 주면 그 다음부터는 감당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안타깝지만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예요” 약초를 캐면서 그도 실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캔 약초를 아버지가 잘 못 먹고 죽을 고비를 넘긴 것.
민대호 선생은 자신같이 평생을 약초를 캔 사람도 이처럼 실수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은 절대 산에서 캔 약초를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약초를 잘 못먹고 중독되는 사고가 지리산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만큼 약초는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게 민 선생의 지론이다.
“우리 세대는 사는 게 어려워서 약초라도 캐어서 먹고 살았어요. 그 덕분에 지리산 어느 골짝에 어떤 약초가 있는지 훤히 알게 되었고 그것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도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즈음은 전문적으로 약초를 캐려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같은 약초꾼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 전수되기 어려운 여건이예요. 우리가 머리에 담고 있는 지리산 약초 군락지들이 자격을 갖춘 후배들에게 전수되었으면 좋겠어요”
민대호 선생은 자신들이 평생 익힌 약초 채집 관련 지식과  지리산 민간요법이 사라져 가는데 대해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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