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3)
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05 18:32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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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3)


1604년경 진주 사람 조완벽이 일본 무역선(貿易船)을 타고 베트남을 수차례 방문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5만 년 전에 동서양이 교류(交流)했다는 연구(硏究)가 있었던 것처럼 수백 년 전에도 동남아(東南亞)와 교류하고 혼인(婚姻)이 계속 이루어졌음을 알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경남 진주·진양 일원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사람들이 8천명이 넘었고 경남일원에도 6만 명. 전국적으로 50만 명이 넘었고 연수생으로 와서 3~6년간 거주하는 이들까지 합하며 150만 명이 넘는다. 다문화 아들, 딸, 손자들이 벌써 24만 명이 넘었다.

우리 여성들이 혼인을 기피하고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동남아여성들은 아기 낳기를 거부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동남아 여성과 혼인한다면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아프리카. 인도. 실론 여성중이서 피부가 깨끗한 배우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씨 시조는 신라 무열왕릉비에 보면 김일제(金日磾)의 후손이라 했는데 최근에 발표한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단군(檀君) 제후국 흉노 휴도왕의 아들이 김일제이며 흉노(匈奴)는 야만족이 아닌 중국 보다 선진국(先進國)이었다.

휴도왕의 장남은 김일제(BC 134~86년)이며 휴도왕의 차남은 김윤이다. 김일제는 신라의 김알지이며 김윤은 가야의 김수로이다.

중국의 한서(漢書)에 보면 김일제의 자는 옹숙이고 본래 흉노 휴도왕의 태자로 김일제의 김을 따서 금성(金城)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휴도성에 살던 흉노가 5만 여명을 거느리고 치외지역이었던 산동성 하택시로 데리고 와서 살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김일제의 묘소는 섬서성 시안 흥양현에 안장되었고 인근에 한무제능이 있어 서로 어떤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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