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4)
진주성-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12 18:33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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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우리도 다문화 가족시대(4)


일제의 후손 김당이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물리치고 신(新)나라를 건국했다. 신나라가 망하자 김일제의 후손들이 후한(後漢)황제 유수의 복수가 두려워 신라로 망명하였고 신나라에서 펼친다는 뜻을 가진 신라(新羅)를 세우게 되었을 것이다.

<단군세기>에 보면 3대 기륵 단군 BC 2177년 열왕의 욕살 색정에게 명하여 약수(弱水)로 옮기고 그 땅에 왕을 봉하여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흉노는 조선의 제후국이다라고 했다.

한나라 무제의 처조카인 곽거병은 17세 때 위청의 부장으로 흉노왕의 전쟁에 참전(參戰)하여 농서에서 승전하게 된다.

이 때 휴도왕(休屠王)과 흔사왕이 한나라에 계속 패하자 선우가 두 왕을 송환해 패전(敗戰)의 책임을 묻게 되었다.

흔사왕은 위태함을 느끼고 휴도왕을 죽이고 휴도왕의 부인과 두 아들을 한나라 장수 곽거병에게 포로로 넘기고 항복해 버린다.

휴도왕의 장남이 신라 김씨 조상이 되는 김일제이다.

어린 포로 김일제는 처음에 장안에서 마구간 노비로 일하다가 발탁되어 마감(馬監)이 되고 이어 시중(侍中)이 되고 광록대부.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오르게 된다.

반란군이 한무제를 알살하려는 것을 막아낸 공적으로 김일제는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되었고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가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김일제에게 김씨 성을 하사하게 된다. 김은 금(金)을 뜻하는 것이다.

경주시 동부동에 있는 문무왕릉비에 시조가 투후(秺侯)김일제(金日磾)라고 새겨져 있다. (투후는 한무제가 죽기전에 내린 작위이다)

<삼국사기>김유신(金庾信) 연대기에 보면 중국 소호금천씨의 후손(後孫)이기 때문에 성을 김으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 한서(漢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으니 확실해 진다.
중국 감숙성 무위시 대로변에 김일제의 동상(銅像)과 말 2마리가 함께 세워져 있고 또 마신(馬神)이라고 새겨져 있다.

섬서성 서안에서 출토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 보면 김씨 집안의 내력을 볼 수 있다.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여셨으니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고 한다. 이 분이 우리가 받은 김씨 시조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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