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공주의 백제역사 유적
진주성-공주의 백제역사 유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13 18:41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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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공주의 백제역사 유적


백제는 애잔한 왕국으로 왕의 친자에게 밀려난 의붓아들이 먼 길을 떠나 새나라를 세웠으나 아버지의 나라에 쫓겨 또다시 천도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이민족을 끌어들인 이웃 나라의 공격을 받고 낙화암의 슬픈 전설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700년 족적과 함께 눈부시게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는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그 일단이나마 엿볼 수 있다. 백제는 BC18년(온조왕1-660년 31대 의자왕20) 3국의 하나로 온조는 고구려 시조 주몽과 졸본왕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앞서 부여에 낳은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니 마한의 일국인 백제국에 정착 350년 13대 근초고왕 시대로 백제의 사실상의 건국은 이때에 된 것이다. 웅진 백제를 중흥시켰던 주인공은 무열왕 25대왕은 키가 크고 성품이 인자하며 너그러웠다고 한다. 무열왕의 유물이 공주박물관(꾸미개, 신발, 팔찌, 은잔, 금팔찌, 금목걸이 등)에 전시되어 있다. 신라의 김유신이 지휘한 신라군과 황산원에서 백제의 명장 계백이 거느리는 5천 결사대에 부닥쳐 4회에 걸친 격전 끝에 이를 격파하고 곧장 사비성에 육박 성아래 합세한 나당 양군의 공격에 못이겨 의자왕은 웅진(공주)으로 피하였고 사비는 함락 그해 7월 18일 연합군에 항복 백제는 31대 678년 만에 망하였다. 의자왕은 태자 신하 등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갔다가 거기서 병사하였다. 백제의 영토는 신라의 판도에 들어갔다.

공주의 백제역사 유적지구를 보면 ▲송산리 고분군-국립공주박물관 지척에 있으며 무열왕릉을 포함한 7기의 능이있어 산책로로 거닐기 좋다. 능의 내부는 개방하지 않고 있으나 초입의 모형 전시관에 가면 무열왕릉과 5-6호분 내부를 재현해 놓아 웅진시대 백제왕릉의 발전상을 알 수 있다. 앞의 웅진백제 역사관에서 64년간의 역사와 5인의 왕에대해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다.

▲공산성-웅진시기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아름다운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서문인 금서루를 통해 들어가 성을 모두 둘러보는데 짧으면 30분 구석구석 훑어볼 경우 2시간 정도 걸린다. 공북루나 공산정 전망대에 올라가면 금강의 물줄기와 평야가 보인다. 야간에 이곳을 찾으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화려한 조명 속 공산성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당시 백제 기술자들의 기술이 높이 평가되어 신라에서 황룡사 9층탑을 쌓을 때 백제 기술자 아비지(阿非知)를 불려갔다. 이밖에 석등 기와 등 백제 미술의 우수함이 나타나 와당의 연꽃무늬를 보아도 백제의 것은 온화하고 아름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아스카(飛鳥)시대 문화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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