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항서 매직
시론-박항서 매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17 18:57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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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박항서 매직


베트남 축구가 ‘스즈키 컵’ 우승을 하면서 베트남은 환호성 도가니다. 덩달아 우리나라 TV채널에서도 이 사건을 연이어 다루고 있다. 아울러 지상파 방송인 SBS에서 베트남 축구를 생중계 하는 일도 일어났다. 무술년 들어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에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대한민국과 베트남과의 관계를 한껏 밀착시킨 쾌거를 이룩했다. 몇백 명의 외교관이 온 힘을 다하였어도 이루지 못할만한 일을 한 셈이다.

사실 박항서를 베트남 축구 감독으로 맡길 때에 베트남에서도 부정적인 지적이 더 많았고, 이를 박항서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오로지 승리의 결과만이 이 모든 부정적 시선과 우려의 시선을 잠재우고 스스로를 의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리고 1여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자신을 당당하게 입증하였음은 물론, 아울러 우리나라와 베트남과의 우호관계증진에도 단단히 한몫했다. 이 일을 재삼 재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사실 박항서 감독의 영입 목표는 바로 이 ‘스즈키 컵’ 우승이었다. 베트남으로서는 AFC U-23 챔피언십이나 아시안게임 4강은 애시 당초 괄호 밖이었다. 이 대회가 ‘스즈키 컵’보다 수준 낮은 경기가 아니라 베트남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높은 위치에 있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나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목표로서 ‘스즈키 컵’ 우승을 설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게 U-23 준우승, 아시안 게임 4강을 위엄을 덤으로 달성하였다. 베트남 축구로서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70년대 80년대 초는 베트남 축구도 강국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축구는 긴 침묵의 기간을 이어 왔다. 그런데 금년 들어 박항서 감독이 그의 독특한 리더십으로 이를 끄집어 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필자도 금년 1월 27일 눈발 날리는 중국 장쩌우에서 치렀던 우주베키스탄과의 U-23 결승전을 호치민 시에 인접한 경상남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동나이 어떤 운동장에서 열광하는 베트남 응원군들 틈에 섞여서 함께 응원하며 TV관람하기도 하였다. 2002 월드컵의 회상에 잠기어 그런 열광에 동화되었다. 이 대회의 최강국으로 예상된 우즈베키스탄 상대에서 마지만 역전골을 내주며 통한의 실패를 하기는 했지만 베트남 축구에 대한 강렬한 확신을 베트남 국민들은 갖게 되었다. 이 결승에는 한국도 올라가지 못하였다. 이 대회를 계기로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더욱 고조 되었다, 이어 비록 한국에 패하기는 하였지만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의 성적으로 스즈키 컵에 대한 우승 열망과 확신은 최고조로 달하여 기어코 이를 달성하였다. “꿈은 이루어 졌다” 이 작은 축구공 하나를 구심점으로 베트남 국민 전체가 하나로 뭉쳐 열광하고 있다. 집단적 행복이다. 내 곁에 있는 베트남 학생이 먹지 않아도 기분 좋다며 통쾌하게 웃는다.

그렇다. 행복이다.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다시 박항서로 돌아가자. 히딩크가 한국축구의 사령탑을 맡았을 때 처음 발견하였던 고질적인 병폐, 축구인맥 파벌의식, 선수들 간의 우월·열등의식, 서열의식, 계층의식 등이 선수들끼리의 소통을 가로 막고 있었다. 히딩크는 이를 타파하여 월드컵 4강을 이루었다. 그 영향력으로 지금 우리 축구선수들은 유럽 및 세계축구무대도 두려워하지 않고 곧잘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히딩크 팀의 코치로 있었던 박항서 감독이 마주친 베트남 축구풍토도 마찬가지였다. 하노이와 호치민의 지역의식,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 말하지 않는 선수들, 체력문제 이를 그의 독특한 스킨십 아버지 리더십으로 상당한 정도로 개선하였다. 그리고 목표이상의 성과로 베트남 국민들은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가? 매일매일 언론 등에서 쉴틈 없이 쏟아지는 파벌의식, 우월주의, 독선주의, 내로남불, 뒤틀린 심사, 비비꼬는 냉소, 억하심정, 우세한 비관주의의 휜 소리들을 언제쯤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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