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단종의 유배지 영월 선암마을
진주성-단종의 유배지 영월 선암마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20 19:09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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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단종의 유배지 영월 선암마을

강원도 영월은 험준한 산과 강물의 물줄기가 자연 장애를 넘는다는 뜻으로 고려때에 이름이 붙여졌다. 1000m가 넘는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쳐있고 그 사이로 여러갈래의 물줄기가 흐른다. 영월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운의 삶을 살았던 단종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강원도 영월은 울창한 산림과 맑은 물 산세가 깊고 수려한 곳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정치적 격변을 겪은 비운의 왕 단종과도 연관이 깊다.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라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영월에는 대한민국 지도가 힘찬 기상을 품으며 누워있는 곳이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이 그곳이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가에 무궁화가 예쁘게 피어있다. 한반도 지형처럼 3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인 동고서저 모습을 고스란히 하고 있다.

유배되었던 천령포는 앞쪽에 서강이 흐르고 뒤쪽에 험준한 절벽이 버티고 있어 유배지로서 최적의 조건으로 3면이 물로 둘러 쌓였을 뿐 아니라 서쪽에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수도 없고 어디로 도망갈데도 없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이틀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 어린나이에 아버지 문종마저 승하한 후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에 숙부(세조)에게 쫓겨나 청령포로 유배당한 뒤 죽음을 맞이한 단종은 청령포 단종어소에서 거처하며 서울에 두고 온 아내를 한없이 그리워 했다. 그리움을 달래며 막돌로 망향탑을 쌓았고 적적할 때 관음송에 앉아 쉬었다. 소나무는 두 갈래로 높이 30m 둘레 5m 수령600년이나 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로 꼽힌다. 천령포에는 단종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단종역사관에서 나오면 장릉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장릉은 단종이 묻힌 묘이다. 중종36년(1541)에 당시 영월 군수였던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아내 묘역을 정비한 후 숙종7년(1681)에 단종이 노산대군으로 추봉하고 숙종24년(1698)에 다시 추봉되면서 무덤도 장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해 264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배식단자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등이 있는데 왕릉에 사당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 있는곳은 오직 장릉뿐이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뒤 청령포 유배생활을 하다가 광풍헌으로 거처를 옮겨 세조3년(1457)에 사약을 받고 17세의 나이에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단종이 거처한 이후부터 자규루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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