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본 욱일승천기와 적기가
진주성-일본 욱일승천기와 적기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27 18:26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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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일본 욱일승천기와 적기가


욱일승천(旭日昇天)은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盛大)해진다는 뜻으로 일본은 한때 전쟁이란 최악의 방법으로 욱일승천의 기세를 누린적이 있다. 그 끔찍했던 일본제국 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지금 그 깃발을 흔드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는 속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일장기(日章旗)는 1868년 왕정복고에 맞선 무진(戊辰) 전쟁때 잔존 막부세력 즉 반란군들이 내린 적기였다. 내란이 진압된 1870년 3월 메이지 신정부가 제정한 상선규칙에 의하여 일장기는 민간선박의 뱃머리에 걸어 일본 국적선박임을 알리는 국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장기는 대외용 국가상징일 뿐이었다. 1870년 5월 육군용 국기로 제정된 욱일승천기는 단순한 군기가 아니고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界)의 일왕이 통치한다” 국민 주권이 아닌 “천왕대권”을 규정한 메이지 헌법(1889) 체제하에서 살아있는 현인신(現人神)인 일왕의 군대를 상징한 이 깃발을 “일왕의 분신”이었다. 이에 일장기보다 더한 존경이 비쳐진 최경례(最敬禮)의 대상 욱일승천기가 히로히토의 손에 들렸던 것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일장기와 욱일승천기는 사용이 금지 되었다. 그러나 1949년 미군정은 일장기의 자유 게양을 허용하였고 1954년 실질적 군대 자위대(自衛隊)가 설치 되면서 욱일승천기도 슬그머니 군기로 되살아났다.

일체의 전쟁 행위를 금지한 평화헌법 개헌이 지금 노골화되고 있는 오늘 욱일승천기 사용을 공식화 하려한다. 과거 대만정벌(1874), 운용호사건(1875),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태평양전쟁(1931-1945) 등 침략전쟁 때 마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공공연하게 사용하고 있어 지록위마(指鹿爲馬: 윗 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서슴지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의 우를 범했다.

영국의 아일랜드 출신 ‘코넬’은 부두노조때 <붉은 깃발>이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인민의 깃발은 한없이 붉었네/ 그 깃발이 순교자의 주검을 감싸네…우리는 붉은 기가 나부끼게 지키리라” 붉은 깃발은 급속하게 번졌다. 러시아의 무정부 주의자, 1920년대 남아공의 백인광부들의 유혈폭동, 1945년 영국의 노동당이 이겨 의사당에서 불렀다. 요즘 붉은 깃발 패러디는 수십종이 넘는다.

1920년때 일본에서 행진곡풍 적기가는 조선에 건너와 공산주의자에게 반항이 컸다. 해방 후 좌익에게 공산혁명 찬양가였고 우익에게 소름이 끼치는 노래 1990년대 중반 북한 김일성 찬양노래로 대한민국 땅에서 붉은 깃발 지키며 불렀던 지하조직의 적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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