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대충주의’와 ‘꼼꼼주의’
아침을 열며-‘대충주의’와 ‘꼼꼼주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12.30 18:30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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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대충주의’와 ‘꼼꼼주의’

책이라는 것을 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중 교정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신경 써서 원고를 작성했더라도 오자나 문법적 오류 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찾아내서 바로잡는 게 교정이다. 나는 엄청 꼼꼼하게 교정을 보는 편이다. 초교 재교 삼교까지 다 보고서야 비로소 ‘오케이’를 놓는다.

최근에 애착이 가는 독일시집을 한권 번역했는데 그 완성본이 도착해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다가 중요한 구절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걸 발견하게 되었다. 경악했다. 나는 꼼꼼하게 교정을 본다고 보았는데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기술적인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편집자는 미안해했지만 책은 이미 서점에 깔려버렸다. 편집자를 탓할 수도 없다. 평소의 치밀함을 잘 아는데다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던 편집자다. 할 수 없다… 생각하지만 마치 이빨에 음식물이 낀 것처럼 영 편치가 않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그런 게 별로 문제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그냥 ‘대충’ 넘어간다. 나는 그런 ‘문제 삼지 않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슨 일이든 철저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꼼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 그런 것이 ‘수준’을, ‘질적인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 치의 실수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런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그 내용이 돈 받고 파는 상품인 경우는 더욱 그렇고 그 내용이 사람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그게 국민과 국가의 상태를 좌우하는 정치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것을 나는 꼼꼼 주의 혹은 철저주의, 완벽주의, ‘신경쓰기즘’ 등으로 부른다. 그 반대가 대충주의 혹은 적당주의 혹은 ‘넘어가기즘’이다.

대충대충 적당적당 스리슬쩍은 흠결을 용인한다. 그런 용인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 되면 그 내용물은 결국 흠결 투성이가 되고 만다. 물건도, 사람도, 그리고 사회도 그렇다. 이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물건 하나의 흠결이 용인되면 결국 사람의 흠결도 국가의 흠결도 다 용인된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다. 이 모든 부실과 부정들이 그런 용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꼼꼼함-철저함은, 기준에 대한, 정상에 대한, 온전함에 대한 ‘제대로’에 대한 특유의 어떤 집착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좋음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 영어로 하면 단순한 ‘good’ 이상의 ‘better’ 아니 ‘best’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best도 아닌 extreme을 지향하기도 한다. 그런 태도 그런 자세 그런 의식 그런 가치관이 이른바 선진국을 가능하게 한다.

꼼꼼하기로 치면 독일이 소문나 있다.

독일에서 지낼 때다. 늘 지나다니는 길목에 도로공사가 벌어졌다. 알다시피 독일의 옛 도시는 길바닥에 돌이 모자이크처럼 박혀 있다. 그게 몇 개 흔들렸었다. 지나다니는 데 별 지장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 다시 손질하는 데 몇날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철저했다. 돌을 거의 ‘심는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도블럭을 적당히 ‘까는’ 것과는 달랐다. 공사가 끝나고 다시 도로가 재개통되었을 때, 그것은 완벽한 옛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길바닥에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그런 식이다. 저들은 아마 그런 자세로 자동차를 만들고 아스피린을 만들고 쌍둥이표 칼을 만들 것이다. 이탈리아의 고미술품 복원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은 세계에 무수히 많다. 그들처럼 ‘되기’를 바란다면 그들처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게 선진으로 가는 발걸음이 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질적인 고급국가밖에 없다. ‘철저-완벽-꼼꼼’이 그 길을 닦아준다. ‘대충대충-적당적당’은 그 길을 막는 가시덤불이 된다. 걷어내지 않으면 그 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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