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율의 詩 산책-나는 벽에 붙어 잤다
김지율의 詩 산책-나는 벽에 붙어 잤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08 18:5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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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 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최지인 ‘비정규’)

얼마 전 가까운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정규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의 사고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사건 사고는 끊이질 않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정규직 비중은 40퍼센트가 넘는데, 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부분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생활이 불안정하고, 희망도 없이 불안을 감수하며 해야 하는 그 모든 노동을 의미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가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내면화해 오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고 그래서 이만한 월급과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 걸까요. 우리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이 사회의 어느 곳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인지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자리를 통해서 사회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항상 있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노동 방식과 시간 그리고 고용의 지속성 등과 같은 계약 조건에서 비정규직은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이미 시의 주제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시인이 스물여덟에 낸 첫 시집의 제목은 ‘나는 벽에 붙어 잤다’입니다. 청바지 같이 오래오래 갈 것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다는 그 제목은 이 시의 한 행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아버지도 나도 ‘비정규’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비정규’를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발이 닿는 곳이 위태로운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겠죠.

저녁이 될 때까지 배를 곯으며 계속 걸었던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외근’이라 거짓말을 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시인의 마음엔 그 누구보다 세상의 벽이 많습니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어 온 아버지보다 어쩌면 시인은 더 두껍고 많은 벽과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이 젊은 시인에게 이 사회는 어떻게 움직여도 벽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장소이니까요.

삶의 문제입니다.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생존의 문제이고요. 아등바등 매달려도 다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벽에 붙어 잘 수밖에 없는 시인은 말합니다. 골목은 언제나 막다른 길로 이어져 있고, 오늘도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한다고요. 누런 밥알을 오래 씹으며 아버지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시인의 ‘벽’은 왜 이렇게 높고 단단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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