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속도조절
시론-속도조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16 18: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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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속도조절

송나라 사람이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민망히 여겼다. 골똘하게 생각하여 빨리 자라게 하는 방편으로 그 넓은 밭의 곡식 싹을 하나하나 일일이 뽑아 올리느라 하루 종일 생고생을 하였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자기의 지혜로움과 부지런함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병날 뻔 했다. 나는 싹이 자라는 것이 너무 더디어서 이를 돕고자 일일이 뽑아 주고 왔다” 이 말을 들은 그 아들이 달려가서 그 넓은 밭을 보니 이미 곡식의 싹은 말라죽어 있었다. ‘맹자 공손추 상’에 나오는 우화다.

진보정권은 힘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항상 희망을 준다. 서슬 퍼런 독재 권력에 목숨 바쳐 저항하고, 권력의 오만과 음모를 까부수어 권력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의 편안함을 누리게 해주었다. 과학기술의 무지향성을 이용한 제품의 생산과 판매로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결과적으로 자본가의 탐욕에 의한 돌이킬 수 없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또한 자연의 원상태로 돌이키기에는 그동안 축적한 이윤을 다 쏟아 부어도 회복이 불가능한 환경파괴를 초래하였다. 진보정권은 이러한 빈부격차와 환경파괴 문제에 대하여 혼신의 정열을 쏟는다.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하며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사회의 구현에 있어서 다양한 지혜를 모은다. 소외자, 장애자, 괄호 밖의 사람들까지 모두 사랑하고 포옹하는 사회적 기틀을 구축하기도 한다. 나아가 그 자비와 사랑의 실천으로 동물권과 자연 보호권을 구체화 하는 제도와 실천의 방법을 마련하여 이를 의욕적으로 실천하기도 한다. 더 큰 그림은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전쟁의 공포, 특히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지키려는 가상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런 바람직한 지향성으로 인하여 진보적 슬로건은 항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자기 독선의 가치지향과 이념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급한 마음으로 치닫다 오히려 이들이 구현하려하였던 가치들이 하나도 제대로 성취되지 못한 채 사상누각으로 스르르 무너져 버릴 위험에도 항상 노출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시도에 있어서 돈과 권력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층들이 교묘하게 깔아놓은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의 프레임에 갇힌 대중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기는 있다. 그래서 진보정책의 구현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어떻든 그 좋은 의도는 앞서 말한 송나라 농부의 성급한 의욕으로 오히려 농사를 깡그리 망쳐 버렸던 것처럼 그 좋은 가치들을 또한 허망한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도 있다. 불행하게도 ‘나를 따르라’는 의욕이 앞서 오히려 ‘나를 따라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비극’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여기에 방향과 현실여건을 고려한 속도조절, 또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광범위한 탐색과 깊이 있는 대안 창출이 필요하다.

지속적 성장, 국민의 균형 소득, 최저임금제, 정확한 상황진단에 따른 소득재분배, 이런 정책들은 필자도 학교 강단이나 각종 강연들에서 늘 줄기차게 주장하여 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하소연은 최저임금제 때문에 일자자리도 줄어들고, 식당도 문을 닫고, 중소기업은 인원 조정하느라 죽겠다는 말들뿐이다. 최저임금과 이런 문제들의 상관관계 및 경로영향력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부담이다. 미래에 대한 먹거리 대책 없이 과거의 적폐청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한풀이 정치’에 대한 싸늘한 시선도 막아낼 재주가 없다. 자국의 핵원자력발전소는 억제하면서 다른 나라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려니 여기에서 생긴 이율배반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와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남북한 문제는 정말 당위의 문제이기에 남북 화해와 민족통일은 재삼 거론할 필요 없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과 실질의 문제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북한의 노련한 외교전술과 전략은 비핵화문제에서 교묘하게 핵군축회담의 뉘앙스와 이미지를 이끌어 내어 북미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변형 고착시켜 이미 핵보유국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누리려 하고 있다. 이 경우 남한이 핵무기를 스스로 개발하여 갖고 있지 않는 한 남한지역은 영원히 주체적 북한의 종속지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

어떻든 진보의 방향성은 매우 타당하지만 그 시의적절한 행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가벼워 보여 의심과 불안이 엄습하는 것은 나만의 감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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