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공무원이 춤추는 세상’
강남훈 칼럼-‘공무원이 춤추는 세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1.24 19: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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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부사장ㆍ주필

강남훈/부사장ㆍ주필-‘공무원이 춤추는 세상’

#1. 지난 90년대 초로 기억된다. 경남의 한 시(市)에서 상주인구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발칵 뒤집어 졌다. 조사결과 실제인구는 9만5천여명. 하지만 상부에 보고하면서 ‘유령인구’ 1만여 명을 만들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했다. 국무총리실 조사 결과 유령인구 조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관련공무원들은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유령인구를 만들어 낸 것은 인구 10만 명이 넘을 경우 국(局)을 둘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국장자리를 만들어 줄줄이 승진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 였다.

#2. “공무원 30여년을 하는 동안 5급 사무관(事務官)으로 승진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에게 필사적으로 충성(忠誠)하는 공무원들이 많아 여차하면 승진에서 탈락하곤 했습니다. 4급 서기관(書記官) 자리도 자치단체마다 한 두 개가 있긴 했습니다만, 최측근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한 퇴직공무원)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전국적으로 농어촌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조직 확대 바람이 불었다. 경남도내 10개 군(郡)도 종전 실(室)·과(課) 중심에서 ‘국 체제’로 조직을 개편했다. 인구 7만명에 가까운 함안군부터 2만 8000여 명에 불과한 의령군까지 2개국을 만들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2월 ‘시군구의 기구설치 및 직급기준’을 마련해 자치단체가 실·국 단위 행정조직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인구 10만 명이 넘을 경우에만 국을 둘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4급 국장 자리가 신설되고 같은 수만큼 5급 과장 자리가 생기는 등 조직과 인원이 확대됐다.

물론 기초자치단체에 4급 서기관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전에는 4·5급 복수직급이었다. 4급 서기관으로 승진시킬 인물이 없으면(?) 5급 사무관도 가능한 자리였다. 국 체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4급 단수 직급으로 정해 놓았다. 각 군마다 ‘승진잔치’가 벌어졌다. 이제 지방공무원의 꿈이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바뀌게 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같은 조직개편에 대해 효율적인 조직 관리와 행정 서비스 개선, 군민 공감소통행정, 지역 특색에 맞는 발전전략 마련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바람에 방만한 조직운영이 우려되고, 부단체장과 국장간의 업무경계가 쉽지 않은 점, 옥상옥(屋上屋), 결재라인이 더 생겨 민원처리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등이 내재하고 있다.

특히 현재 4급인 부군수의 직급을 3급으로 조정해 달라는 요구와 인구 3백만명 이상 광역시도의 행정부지사를 현재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문제(서울, 경기도는 현재 2명) 등도 행정안전부에서 논의되고 있어 지자체의 몸집 부풀리기는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여 명을 증원할 계획이어서 자칫 ‘공무원의 천국’으로 변할 우려도 없지 않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기 대표적인 정치가인 그는 조정의 잘못된 정책을 과감히 개혁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백성이 춤추는 세상’을 꿈꾼 이상주의였다. ‘실패한 개혁가’라는 평가도 일부 있지만,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라는 그의 절명시(絶命詩·37세)는 왜 그가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칭송 받는지 짐작하게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벌인 조직 확대 바람이 지역발전과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백성이 춤추는 세상’이 아닌 ‘공무원이 춤추는 세상’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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