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도(道)가 깊어지면 예지(叡智)도 깨어난다(Ⅳ)
칼럼-도(道)가 깊어지면 예지(叡智)도 깨어난다(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11 19:0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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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도(道)가 깊어지면 예지(叡智)도 깨어난다(Ⅳ)

‘주역’을 지리학상으로 전개해 보면 우리나라는 간방에 해당되는데 지금 역(易)의 진행 원리로 보면 이 간방의 위치에 간도수(艮度數: ‘주역’에서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후 정신을 말함)가 비치고 있다. 이 간도수는 이미 1900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 4월 19일 일어난 4·19혁명은 청년학생(소남)의 궐기로 이승만 정권(아버지)을 무너뜨렸는데, 이렇게 청년학생의 힘으로 정권이 붕괴된 일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4·19혁명의 영향으로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학생들의 봉기운동이 일어나 유행처럼 번져 나갔으며, 그 결과 선진국에서 ‘스튜던트 파워’를 형성하였다. 즉 4·19혁명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 것이었다.

이상의 원리로 볼 때 소남은 시종(始終)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간방에 간도수가 접합됨으로써 어두운 역사는 끝을 맺게 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인류 역사의 시종이 지구의 주축(主軸)부분에 위치한 우리 땅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과 통일 문제를 살펴보자. 전체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면 작고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야말로 오늘날 국제 정치의 가장 큰 쟁점이며, 한반도 문제 해결이 곧 세계 문제 해결로 직결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상은 곧 지구의 남극과 북극의 상대적인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겠다. 지구의 남극(南極)과 북극(北極)은 있지만 서극(西極)과 동극(東極)은 없지 않은가? 이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동서의 문제가 바로 역사의 결실기를 맞아 남북의 문제, 즉 지구의 표상인 남극과 북극의 상대적인 현상과 닮아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여러 난제들, 예를 들면 남북 분단, 경제적 양극화, 세대 간 갈등, 급속한 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충돌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천 년 동안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역사는 머지않아 종결될 것이다. 역학의 원리로 본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은 일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강점할 당시 그들은 일본 황궁(皇宮)을 한반도로 옮기려고 궁리까지 마련한 적이 있었다. 또한 영구히 일본 본토로 만들기 위해 우리 민족의 대부분을 만주 등으로 이주시킬 계획까지 세웠었다. 그러나 36년이라는 일시적 강점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났듯이 우리나라의 남북분단 문제 또한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이다. 머지않아 통일을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에 하늘의 섭리가 필연적으로 작용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주변국의 관계에도 음양의 이치가 작용하니 우리나라와 미국관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1945년 8·15 광복은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등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키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다는 것을 역학적으로 풀이하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자 우주의 필연적인 원리이기도 한다. 역학에서 ‘소남(小男)’과‘소녀(小女)’, ‘장남(長男)’과 ‘장녀(長女)’, ‘중남(中男)’과 ‘중녀(中女)’는 서로 음양(陰陽)으로 천생연분의 찰떡궁합의 배합(配合)이다. 미국은 역학에서 ‘태방(兌方)’이며 ‘소녀’다. 이 소녀는 소남인 우리나라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까닭에 해방 이후 정통적인 합법 정부를 수립한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일의 우방으로 삼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건국을 도왔고,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함께 전선(戰線)에서 피를 흘린 맹방(盟邦)이 되었으며, 전후(戰後)에도 수많은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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