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주필의 신인물기행-㈜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
강남훈 주필의 신인물기행-㈜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12 18:51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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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인생’ 100년, 천년고도 진주를 품다

 

 

순수한 땅의 기운으로 탄생한 장생도라지
국내 도라지 개발 산증인 다년생 재배 특허
일본 수출길 호조…미국 판로개척도 추진
진주대표 향토기업으로 지역발전 이끌 것


경남 진주시 금곡면 정자천로 ㈜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60).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월 30일 이었다. 설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무척 분주했다. ‘1원을 1억처럼, 1초를 1년처럼’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과 3층 박물관에서 진행됐다.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막힘이 없었다. 빈틈도 없었다. 역시 삼성맨 출신답게(21년간 근무, 삼성태크윈 수석인사과장) 준비가 철저했다. 금쪽같은 시간이라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왜 장생(長生)도라지 인가요.
▲보통 도라지는 3~4년 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백과사전에는 여러 해 살이 식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이 20년 이상 재배가 가능한(죽지 않는 도라지) 재배법을 찾아내면서 21년산 장생도라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21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과 동물, 식물에게는 21이라는 숫자가 상당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군신화에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21일 만에 인간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하는데도 21일이 걸립니다. 돼지가 새끼를 낳아 젖을 떼는데도 21일이 걸리고, 사람이 아이를 낳은 뒤 삼칠일(21일) 동안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이 그 예입니다. 해마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지요. 결국 21이라는 숫자는 완숙(完熟)을 의미 합니다.

-그럼 21년산 도라지의 효능은 산삼(山蔘)이상이겠네요.
▲예부터 ‘오래된 도라지는 산삼보다 낫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21년산 도라지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1989년 이후 경상대 등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만병통치약에 가깝습니다.

-불로초(不老草)로 불러도 되겠네요.
▲허허… 그렇게 봐야지요.
불로초. 중국 대륙을 최초로 천하통일 한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이 그토록 찾던 것이었다.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을 이룬 그는 자신이 세운 나라가 ‘영원불멸’이라 주장하며,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염원했다. 수 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풀어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지만, 진시황은 끝내 찾지 못하고 겨우 50세의 나이로 객사(客死)해 그의 꿈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기 원했던 불로초. 2200여 년이 흐른 지금 경남 진주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영춘 대표가 장생도라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3월. 올해로 21년째다. 부친 이성호 옹(89)이 저질러 놓은 28억원의 빚더미를 해결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고등학교만 졸업(진주기계공고)하고도 대기업에서 샐러리맨으로 승승장구 하던 그는 “회사(성호다년생도라지 영농조합법인)를 맡아 운영해라”라는 아버지의 엄명(?)을 거절할 수 없었다. ‘성공 못시키면 집안은 끝이다’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소재이자 특허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해 볼만 사업이라는 ‘믿음’이었다.

그의 부친 이성호 옹이 누군가? 열네 살 때인 1944년 심한 기침과 지병으로 몸이 무척 쇠약한 동네 아저씨와 지리산 산골에 나무를 하러갔다 (아저씨가)오래된 식물뿌리(도라지)를 캐어 먹고 사흘을 잠든 뒤 지병을 완전히 치료했던 ‘신비한 체험’을 한 후 지금까지 70여년이 넘는 세월을 ‘도라지’에 인생을 바친 인물이다. 이웃으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지리산 깊은 산속에서 도라지를 재배하고 연구해 오늘의 장생도라지를 있게 했다. ‘도라지 하나로 세계를 제패하다’라는 제목으로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도 실렸다.

부자(父子)가 도라지에 바친 세월은 근 100년. 인고의 긴 시간을 보낸 ㈜장생도라지는 숱한 우여곡절 끝에 진주를 대표하는 든든한 향토기업(鄕土企業)으로 자리 잡았다. 실크의 명성과 대동공업사의 오랜 추억을 간직한 도시 진주를 품에 안으며,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진주의 심장부로 촉석루가 한 눈에 보이는 남강다리(진주교)목에 위치한 이 회사의 대형광고탑(전에는 하동녹차가 차지하고 있었음)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 진주시 금곡면에 소재한 장생도라지 사옥과 박물관.

-죽지 않는 도라지의 비법이 무엇인가요.
▲부친께서 지리산 깊은 산속에서 5년째 도라지를 재배하면서 경이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도라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거름이 없는 황토 땅에 심어두었는데, 이 자리에서 새순이 기운차게 돋아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료와 거름을 준 땅에서 3년을 넘기지 못하던 도라지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 순수한 땅의 기운만으로 새 생명을 시작하는 자연의 섭리를 알게 된 것이지요. 즉 토양을 옮겨 주니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배법도 특허로 등록되어 있다지요.
▲특허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자연을 찾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아주 엄격하게 관리됩니다. 3년 이후부터 20년이 넘기까지 각각의 시기마다 민감한 기술적 요소들은 물론, 재배 이력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도라지가 해를 거듭할수록 괴물처럼 자라게 됩니다.

-재배하는 곳은 어디이죠?
▲함양, 산청, 하동군 등 지리산 자락에서 250여 농가가 재배하고 있습니다.

-장생도라지의 효능에 대해 만병통치약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결과 일반도라지의 사포닌 구조 수는 16~17종에 달하나 장생도라지는 32종입니다. 배에 가깝습니다. 한의학에는 300여 가지의 처방이 있는데 이중 287가지 처방에 도라지(길경, 桔梗)가 들어갑니다. 면역력을 높여주고 피를 맑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만병의 근원은 피가 탁해서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장생도라지는 지금까지 연구비로 투입된 예산만 100억 원이 넘는다(정부예산+매칭펀드). 경상대, 충남대, 대구대, 창원대, 부산대 등에서 식품, 한의학, 의학, 약학 등 다방면의 전문연구원 20여명이 연구를 하고 있다. 도라지에 대해 현대과학이 밝혀낸 자료 99%가 이 연구 결과이며, 국제학술지 등에서 공인도 받았다. 기관지질환, 인지기능, 간질환, 당뇨 개선은 물론 항균, 항염, 고지혈증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회사를 맡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출퇴근 시간, 식사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는 등 ‘기본’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출퇴근은 직원들 마음대로였고, 구내식당은 하루 종일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모든 것을 메뉴얼화, 표준화 시켰습니다. 아침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했습니다. 삼성에서 익힌 경영수업 덕분으로… 이제는 직원들 모두(24명)가 일당백의 몫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향토기업으로 자리 잡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많았겠네요.
▲회사제품을 알리는 데는 언론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신문 방송에 자주 부각되다보니 소비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농업기관단체, 대기업 등에 자주 다닌 강의도 회사를 홍보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장생도라지라는 현 상호를 등록하는데도 10년이 걸렸습니다. 특허청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며 4번을 기각 했지요.

-벤처농업협회 회장도 오래 하셨다면서요.
▲2000년에 경남지역 농업관련 20개 업체가 참가해 협회(현재 회원 200명)를 만들었지요. 농업도 디지털(IT)화, 6차산업화 돼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 회장을 6년간 했습니다. 농민의식 변화를 위한 일종의 농민운동이었지요. 이후 충남 금산에 폐교를 얻어 전국적으로 벤처농업교육을 실시했고, 벤처농업대학도 설립했지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닌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만들어 내는 제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장생도라지 진액 생기(生氣), 활맥(活脈), 기(氣), 맥(脈), 농축액 진(珍), 농축액과 분말로 빚은 기환(氣丸), 맥환(脈丸), 혈중콜레스테롤 개선제인 혈당케어, 젤리, 캔디, 차, 요즘 효자 품목인 기능성 화장품, 장생도라지로 빚은 보석 같은 술 진주(珍酒) 등 모두 21개 품목입니다.

-술까지 제조하시나요.
▲김혁규 전 경남지사께서 천년고도 진주를 대표하고, 경남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어 보라고 권해 몇 번 거절했습니다만 결국 손을 대게 됐지요. 2006년 7월 출시를 했으나 매년 2~3억씩 적자였습니다. 어려움이 컸죠. 직원들이 ‘술 사업 접자’라고 몇 번이고 제안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때문에 끌고 왔습니다. 기계의 감가상각비가 끝난 지난해부터 겨우 적자를 면했지만 사연이 참 많습니다.

 

 

 

▲ 장생도라지로 만든 제품들.

-최근 몇 년간 회사가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제 탓이겠죠.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진주의 술 ‘진주’를 이 지역 단체장이 외면해 버리고, 아예 도외시하면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행사 공식건배주에서 빠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하다 보니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새 단체장이 취임하면서 ‘친(親)기업 정서’로 돌아 선 게 저를 비롯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기업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단체장이 해야 할 큰 역할이고, 그래야만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앞으로 기업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이신지.
▲최근 몇 년간 어려울 때 인근 지자체에서 ‘자기 지역으로 오라’는 러브 콜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책임감과 진주에 대한 애향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지역을 위해 수많은 금전적, 물적 봉사를 해 왔지만, 때론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진주의 향토기업으로 남을 겁니다. 환갑, 칠순, 팔순 잔치 한번 안하시고 그 비용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신 아버님의 정신을 오롯이 이어 받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역을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 ‘대물림’은 안합니다. 능력 있는 직원을 전문경영인으로 선임해 회사 경영을 맡기는 등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공자(孔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첫 번째 출국을 단행하던 도중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라는 제일성이 떠올랐다. ㈜장생도라지는 지난해 65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올해 목표는 70억원. 한때 연간 300만 달러를 기록했던 일본 수출이 올해는 다시 호조를 보여 이 목표달성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 시장개척을 위해 설이 지난 8일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달러 보따리를 한 짐 가득 짊어지고 오길 기대해 본다. 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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