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핵은 새로운 열전의 시작이다
시론-북핵은 새로운 열전의 시작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20 18:5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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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

강원식/정치학 박사·전 주 벨라루스 대사-북핵은 새로운 열전의 시작이다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는 전 세계에 퍼진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진화한 유인원들과 인간의 전쟁을 그린 것인데, 원래 같은 제목의 1968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혹성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찰톤 헤스톤)가 노예생활에서 탈출하는데, 알고 보니 그 혹성이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였다는 내용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바로 이런 인류 공멸의 핵공포를 배경으로 1968년 7월 1일 발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2500만 명의 전사자와 3,000만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남긴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열전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미소 양극에 의한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는데, 냉전은 일본에 떨어진 2개의 핵폭탄으로 상징되듯이 곧 핵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미국(1945)에 이어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 중국(1964)이 핵개발에 성공하면서 핵무기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다. 냉전시대 핵확산은 적의 선제 핵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남아있는 응징보복 핵 공격력을 이용하여 적을 괴멸시킨다는 ‘상호확증파괴’(MAD)라는 핵전략개념에 입각하였다. 보복 공격력을 확보함으로써 적의 선제공격을 저지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전략개념은 핵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핵 억지전략이다. 그래서 냉전시대는 핵공포의 균형이었고, 냉전시대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였다.

그러나 이제 북핵으로 새로운 핵확산의 문이 열리고 있다. 더 이상 냉전이 아니라 열전이다. 왜냐하면 북핵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무기’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공포의 균형은 보복 공격력의 확산 경쟁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소량일 뿐만 아니라 운반수단의 한계로 보복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상정할 경우, 현재의 정보력과 기술력으로 북한이 보유한 대부분의 핵능력을 거의 파괴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 후 남아있을 북한의 보복 공격력이 상대를 위협할 정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따라서 북한은 보복 공격력 확보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보유한 것이 아니다. 북핵은 선제공격할 경우에만 효력을 갖는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명백히 공격용이다. 북핵문제가 지난 사반세기 이상 국제 쟁점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북핵이 공격용임을 입증한다. 만일 금방 쓰러질 듯 병약한 사람이 수전증에 떨리는 손에 장난감 칼을 들고 건장한 청년을 협박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위협이 될 수 있을까. 위협은 그 능력과 의지가 상대에 의해 인식될 때 성립한다. 북핵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스스로 국제사회에 그 공격능력과 실행의지를 입증하여 왔고, 전 세계가 이를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선제공격을 불사할 것임을 위협하고 있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과 이복형 김정남 독살 등 인륜을 저버리는 상식 밖의 정권임을 보여주었기에, 국제사회는 북한이 보복 괴멸될 상호확증파괴(MAD)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비정상(mad)의 상태임을 느끼고 있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서울 불바다’는 결코 빈소리가 아니다.

북핵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NPT 체제가 무너지고 핵의 판도라 상자가 열려 공격용 소형 핵무기가 확산될 것이다. 이는 세계적 열전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류 공멸의 위기는 북핵으로 부터 온다. 북핵은 남북한만의 동북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해체작업이 즉각 착수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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