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따뜻한 밥상을 만나다
오늘의 詩-따뜻한 밥상을 만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20 18: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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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주/경상대학교 강사-따뜻한 밥상을 만나다
 

조효주/경상대학교 강사-따뜻한 밥상을 만나다


장편掌篇 2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전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액체는 규정된 형태나 틀을 갖지 않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슬라임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굳이 분류하자면 시도 액체류다. 시는 말랑하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아침에 읽을 때와 저녁에 읽을 때의 느낌이, 그 울림이 다르다. 여백이 있어 더욱 말랑해지는 시, 행간을 읽고 상상하는 일이 즐겁다. 형태를 고집하는 고체가 아니어서 참 좋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김종삼. 그의 시는 여백이 많아서 더 말랑하다. 짧은 그의 시들이 빛날 수 있는 것은 시에 액체성을 부여한 여백의 힘이 아닐까. 「장편 2」도 그런 힘이 느껴지는 시다. ‘손바닥만 한 짧은 글’이라는 뜻을 가진 시의 제목처럼 길이는 매우 짧지만, 그 안에서 울림이 일으키는 파동은 가늠하지 못할 만큼 크다.

이 시의 배경은 식민지배 통치기구였던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다. 그러니까 시에서 보여주는 흑백사진 같은 장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서울의 명소가 된 현재의 청계천에서 그 옛날의 청계천을 그려내기란 쉽지 않지만, 십 전짜리 균일상 밥집이 있었다는 당시의 청계천변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 속에서 누구 할 것 없이 궁핍한 삶을 살았다. 먹고사는 일이 어려웠고, 그래서 빌어먹는 이들도 많았다. 먹을 것이 있는 곳에는 거지들이 모였다. 때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때로는 보리밥 한 덩이를 얻어 주린 배를 채웠다. 이들 가운데 거지 소녀가 있다. 부모님은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소녀’는 심청이가 눈먼 아버지를 봉양하듯 어린 나이에 어버이 손을 이끌고 구걸을 다닌다. 힘든 시절에는 인심도 사나워진다. 어떤 이들은 식은 밥이나 동전 한 닢을 건네주지만, 어떤 이들은 매운 눈길로 쳐다보거나 고함을 질러 내쫓는다. 그럴 때마다 소녀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린다.

어느 날 소녀는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청계천변에 있는 십 전짜리 균일상 밥집으로 간다. 그날도 주인 영감은 저리 가라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 소녀는 평소와 달리 고함소리에도 꿈쩍 않고 태연하다. 주인 영감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소녀는 꼭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민다. 꽃잎처럼 펼쳐진 작은 손바닥에는 ‘십전짜리 두 개’가 놓여 있다. 소녀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이 번진다. 소녀는 주인 영감에게 말한다. 오늘이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건들이 떠오른다. ‘자녀 학대, 살해’, ‘결혼 반대 어머니 살해’ 등 가족을 해치는 이런 뉴스를 보면서 부모와 자식,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 없이 ‘나’만 강조되는 모든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한다. 균열의 틈새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작은 틈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 틈을 메우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음도 알고 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장편 2」에서 확인하게 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소녀를 사랑으로 길러낸 ‘어버이’와 구걸한 돈을 고이 모아두었다가 부모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선물하는 소녀. 이들이 우리에게 가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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