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애와 연민과 조화 속에 살아가자
칼럼-자애와 연민과 조화 속에 살아가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2.26 18:5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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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자애와 연민과 조화 속에 살아가자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야한다.

서로가 인연을 맺고 의존하며 변화해가고 있음으로 주변의 변화가 곧 나의 변화이다.

‘초참(初參)’이란 실수가 많은 사람을 말하고, ‘노피참(老皮參)’이란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닮은 사람을 말하며, 불지참괴(不知慚愧)’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을, 불지고뇌(不知苦惱)’란 고민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고민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우리민족은 본래 양반이었는데 서양문물이 유입되면서, 배우지 말아야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까지 배워서 언행이 거칠어지고 국민성도 변해버렸다. 지금처럼 거칠어진 언행을 후세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화난표정의 거친 언행을 사용하고 나면 금방 후회 하겠지만 상황은 이미 나빠져 버린 후가된다. 화가 날 때는 말없이 잠시 기다려보라.

화를 참지 못하면 모든 일이 뒤틀리게 된다. 남들의 비판이나 비방을 받으면 억울하여 화도 나겠지만, 화가 나더라도 언행은 극히 조심하여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로부터 공정하지 못한 중상모략과 짓밟힘을 당할 수가 있다. 그러나 참기 어려운 일을 참는 사람이 성공한다. 화난 표정에 쏘아 붙이는 거친 언행보다는, 부드러운 언행과 자애로운 인덕을 많이 베풀어 나가보자. 언행이 거칠면 무시당하고 상처받게 된다. 그러면 나쁜 평판으로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서 배울 때에는 유익한 것만 배워나가야 한다.

우리조상님들이 입은 흰옷은 청정을 상징하여서 언행도 깨끗하고 가지런하였다. 남을 속이려는 마음도 없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지름길이었다. 노래를 불러도 점잖 하였고, 춤을 추어도 덩실 춤추었다. 남자들도 신사복을 입었을 때와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의 언행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각자의 용모가 자신의 신분증이 된다. 사람의 얼굴은 모두가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쌍둥이까지도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도 다른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며 고집부리지 말자. 지혜 없는 사람이 아첨을 하며, 경솔한 사람은 장담을 잘하고, 고상한 인품을 지닌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한다.

그분들이 사회갈등을 줄여나가고 있다. 서로 시비하지 말고 자기할 일만 충실히 해나가자.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명저 ‘자유론’에서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하였다. 서로를 존중하며 자애와 연민과 조화 속에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가는 것은 가도록 놔두고,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맞이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도록하자. 인생살이는 죽어도 보고 살아도 보고, 엎어도 보고 뒤집어도 보며 살아가야한다. ‘나’라는 욕심으로 살아갈 때 장애를 만나면 화가 나고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미운 상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잘났다는 착각을 버리고, 거울의 먼지 닦듯 매일 자신을 갈고 닦으며 미래를 희망적, 긍정적, 낙관적으로 보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자. 지금처럼 거칠어진 언행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 지혜가 없으면 재물과 영혼까지도 도둑을 맞으므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비워 평화를 찾아가자. 혼자 하는 일은 힘들어도 함께하는 일은 밝고 활기차다. 우쭐하면 허한 속이 그대로 노출되고, 경솔한 언행은 성공의 장애가 되므로 자애와 연민과 조화 속에 살아가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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