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그들’이 아니라, ‘우리’ 였음을
도민칼럼-‘그들’이 아니라, ‘우리’ 였음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06 18: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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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주/경상대학교 강사

조효주/경상대학교 강사-‘그들’이 아니라, ‘우리’ 였음을

귀로歸路
신경림

온종일 웃음을 잃었다가
돌아오는 골목 어귀 대폿집 앞에서
웃어보면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서로 다정하게 손을 쥘 때
우리의 손은 차고 거칠다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풀어져
어둠이 덮은 가난 속을 절뚝거리면
우리는 분노하고 뉘우치고 다시
맹세하지만 그러다 서로 헤어져
삽짝도 없는 방문을 밀고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음성은 통곡이 된다

‘귀로’를 읽는 순간, 왜 그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관심 밖에서 부유하고 있던 그들인데, 다만 뉴스가 전하는 억울한 죽음을 마주할 때 짧은 순간 울컥, 하는 감정의 파동이 공간을 살짝 흔들었지만 곧 잊히고 말았는데, 시를 읽는 이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TV 화면이 켜지듯 그들의 천막과 눈물과 한숨이 떠오른다. 웃음을 잃고 가난 속을 절뚝거리는 ‘귀로’의 집단적 화자 ‘우리’가 어느새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 매운 칼바람이 낡은 천막을 흔들며 지나간다.

‘우리’의 하루는 몹시 고단하다. 일용직 일터에서, 혹은 일자리를 찾아 하루 종일 걸어 다닌 길 위에서 보낸 오늘이 너무나 버겁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지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던 “우리”는 우연인 듯 골목 어귀에 있는 대폿집 앞에서 만난다. 오늘따라 더 반가운 마음에 “어이~”하며 덥석 손을 잡는다. ‘차고 거칠’어진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말 없는 위로다. ‘우리’는 술잔을 들고 괜히 목소리를 높여 “위하여~”를 외친다. 무엇을 위해서 잔을 들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빈 위장을 타고 내려가는 소주의 짜릿함이 오늘따라 더 좋다. 한 잔의 술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이겨내 보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어둠이 덮은 가난’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파리한 얼굴로 잦은 한숨을 내쉬던 아내의 모습도 떠오른다. 가슴이 답답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삽짝도 없는’ 집에서는 가난한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오늘은 남편이 두 손에 희망 한 조각이라도 들고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연신 방문을 쳐다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은 텅 비어 있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에서 시커먼 절망을 읽는다. 통곡이 몰려온다.

절망적인 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절벽 같은 현실세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일상을 지배했던 절망은 삶을 서서히 갉아먹고 드디어는 생명까지 빼앗아 갔다. 매체를 통해 우리는 이런 일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런데도 해고자 서른 명의 죽음이,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고통이 우리 모두의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지난해 쌍용자동차 노사가 ‘그들’의 전원 복직을 합의함으로써 더 이상 비극적인 죽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을 삼키는 ‘그들’, 아내의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그들’이 있다. 신경림 시인은 그들이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한다. 농민과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삶을 가슴으로 껴안았던 시인의 ‘귀로’를 읽는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마지막 행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우리들의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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