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껄이기즘’과 ‘듣기즘’
아침을 열며-‘지껄이기즘’과 ‘듣기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06 18: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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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지껄이기즘’과 ‘듣기즘’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 ‘별의별’이라는 것은 일단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개성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라면, 심지어 피해를 주는 경우라면 그건 문제다. 말이 많은 경우도 그럴 수 있다. 더구나 그 말이 일방적인 경우는 더욱 그럴 수 있다.

우리 주변엔 그런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그들은 잠자코 있질 못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거의 발언권을 독차지 한다. 다른 사람이 뭔가 말하고 싶어 해도 좀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 A라는 인물은 직장 홈피 게시판에 거의 매일 글을 올린다. 내용도 거의 자신의 신변잡기다. 거의 일기 수준이다. 거기엔 엉뚱한 자화지찬도 섞여 있다. 그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줄기차게 올린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난, 공격의 내용들도 비일비재다. 그 표현도 비속하기 이를 데 없다. 오프라인에서 다른 회원들을 만나보면 거의 환멸을 느끼겠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아예 접속을 꺼린다. B라는 비슷한 인물이 거기에 가세했다. 둘의 쿵짝이 아주 가관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듣는 이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의 말은 완전히 일방통행이다. 하여 그 게시판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입에도 귀에도 질이 있고 품격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입이라고 다 입이 아니고 귀라고 다 귀가 아닌 것이다.

듣는 귀를 의식하지 않는 입은 입이 아니다. 그런 입이 하는 말은 말이 아니고 지껄임이다. 적지 않은 경우, 자식에게 하는 부모의 말, 후배에게 하는 선배의 말, 부하에게 하는 상사의 말, 학생에게 하는 선생의 말, 국민에게 하는 정치인의 말이 그런 지껄임이 되기도 한다. 듣는 이의 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입이 하는 그런 말들을 나는 ‘지껄이기즘’이라고 부른다. 지껄이기스트들의 지껄이기즘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해악을 가하기도 한다. 그 말의 내용이 들을 만한 것이어야만 비로소 말인 것이고 그런 말을 하는 입이어야만 비로소 입인 것이다.

우리는 ‘듣기’를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듣기란 단순히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을 자기의 생각 속에서 행위 속에서 고려하는 것이다. 아니, 듣기란 애당초 상대방의 언어에 대해, 아니 상대방 그 자체에 대해 열려 있는 실존의 한 양식인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선’의 한 기본조건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해 닫힌 선이란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적어도 윤리적 선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독선이라고 부른다.

‘듣기’의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면 거기에도 판단이 있고 주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그것과 충돌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토론 혹은 의논이 필요해진다. 하버마스나 롤스 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이 그럴 때 빛을 발한다. 그런 게 통하는 세상이 성숙된 사회, 수준 있는 사회, 질 높은 사회, 품격 있는 사회, 선진 사회인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보는 것, 즉 ‘듣기즘’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의미의 ‘듣기스트’가 참으로 적다. 그런 교육도 연습도 훈련도 없었고 그 중요성에 대한 지적이나 강조조차도 별로 없었다. ‘듣기’는 심지어 ‘손해’로 이어졌고 그렇게 인식되었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듣기에 대한 칭찬과 지껄이기에 대한 지탄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말을 들어줄 귀는 이 사회에 과연 있을까? 일단 한번 기다려봐야겠다. (“진정한 언어는 언제가 어디선가 그것을 들어주는 귀를 만나게 된다”고 나는 말한 적이 있다. 아직은 그 귀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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