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아중·고 설립자 亞人박종한 선생 별세
대아중·고 설립자 亞人박종한 선생 별세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5.08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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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서 인재육성까지’ 구국 한평생
▲ 지난 7일 늦은 밤 노환으로 우리들의 곁을 떠난 진주교육계의 거목 아인 박종한 선생의 생전 모습.

항일투쟁단체 반진단(般震團) 결성 활동

해방 후 대아중·고등학교 설립 후진양성
다도문화 개척·남명제(南冥祭) 창설 계승


진주 교육계의 거목 아인 박종한(朴鐘漢) 선생이 지난 7일 늦은 밤 노환으로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다.

선생은 생전에 대아중·고등학교를 설립하시고 교장으로 역임하면서 진주의 교육 발전에 헌신하였을뿐 아니라 ‘차의 날’ 제정에 앞장서 진주를 한국 차문화 운동의 요람으로 만드는데 큰 힘을 보태셨다.

또한 남명제 창설, 진주의 문화재를 발굴하여 진주정신이 바탕이 된 진주문화를 알리는데 일생을 바치셨다. 진주의 큰 어른으로 진주를 위해 일생을 바쳐 후세들에게 살아가기 좋은 울타리를 만들어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박종한 선생은 1925년에 태어나 1943년 4월 진주공립중학교 졸업하고 이어 진주고등학교 졸업했다. 

1943년 8월,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을 예측한 박종한 선생은 최소해(崔小海), 김대성(金大成), 서병도(徐炳道) 등과 함께 민족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반진단(般震團)’이라는 항일투쟁단체를 결성했다. 폭탄을 제조하고 독립선언문을 기초하다 일본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해방이후, 반진단원들은 ‘나라에 가장 시급한 일이 곧 인재육성’이라는데 뜻을 모으고 학교를 설립한 것이 경남사학의 표본인 대아중·고등학교이다.

박종한 선생은 1953년 4월 8일 ‘반진구국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삼아 진주에서 대아중·고등학교를 창설했다. 33년간 교장을 역임하면서 오민교육 창시, 다도교육 실시, 창렬사 참배, 충무공탄신기념행군 등 인성교육을 실시해 경남사학의 대표적인 학교로 육성시켰다.

특히 1984년에는 재학생 66명이 서울대학교에 진학, 교육도시 진주의 위상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이후, 서울과 부산 등 전국의 명문고등학교 관계자들이 대아고를 찾아와 교육현장을 답사하는 등 대아고는 전국의 명문고등학교로 자리잡았다.

또한 대아고에서 실시한 다도교육(茶道敎育)이 계기가 되어 차(茶)의 불모지였던 진주를 한국 차문화(茶文化)의 요람으로 키웠다. 이후, 전국 차인회 결성에 주도적 역할(초대부회장과 고문)을 해 한국차문화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뜻을 같이한 차인(茶人)들과 함께 매년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정하고, 선언문을 직접 지어 촉석루에서 ‘차(茶)의 날’ 선포식을 가졌다.
교육과 차문화의 발전을 이끌어 진주의 위상을 높이는데 온 힘을 쏟은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재 발굴 사업을 통해 진주정신으로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선생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경의정신(敬義精神)이 경남사학의 염원이라는 인식아래, 남명 선생의 학문과 뜻을 기리는 남명제(南冥祭) 창설을 계획하고, 1977년 8월 9일 ‘제1회 남명 조식선생 祭’를 지냈다. 남명제는 올해로 제 28회째를 맞고 있다.

또한 진주의 문화재를 발굴하여 대아고 내에 ‘오민박물관’을 만들어 학생교육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전국 주요도시 순회전시회를 개최해 천년의 속내를 키워 온 진주문화 선양에 앞장섰다. 향토전승 도예 개척을 위해 아인도방(亞人陶房)을 만들어 진주의 도예문화를 만들어 냈고 청학동에 민족제단과 민족혼탑을 건립하여 민족정기를 선양했다.

선생은 이러한 업적들을 인정받아 2008년 한국차인대상 교육부분 수상, 국차인 연합회 창설 공적패, 한국다도협회 차문화 공로상, 초의상, 명원차문화 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 MIT, 하버드대 한국다도 강연, 나고야 성 박물관 이도다완 특별강연, 한·미·일 다완 및 다도구전시 20여회 등을 통해 국위선양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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