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이 선생 서훈 이뤄지도록 도와주세요”
“김용이 선생 서훈 이뤄지도록 도와주세요”
  • 김상목기자
  • 승인 2019.03.13 19:00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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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서부경남서 의병활동 불구 서훈 안돼
의병장 이상수 장군 휘하에서 독립운동 전개
김용이 선생
김용이 선생

“나라를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원혼을 달래줄 수 있도록 서훈이 반드시 이뤄졌으면 합니다”

김상명(82·창원시 마산합포구 회진로 144-52)는 최근 바람이 하나 생겼다. 바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큰 아버지 김용이(金龍伊·1889~1917년) 애국지사가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공적을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김상명씨에 따르면 큰 아버지 용이씨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지만 아직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이상수 의병장의 재판을 했던 대구고등검찰청의 재판기록에 등장하는 김용이 선생
이상수 의병장의 재판을 했던 대구고등검찰청의 재판기록에 등장하는 김용이 선생

 

최근 사천문화원이 펴낸 ‘사천 항일운동사’에 따르면 용이씨는 경남에서 활동한 의병장 유명국 장군의 중군장으로 활약한 이상수 의병장과 함께 하동 일원에서 일군과 전투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 책에는 “이상수 장군은 명치 41년(1908년) 6월 어느날 밤 의병부대원 김용이(金龍伊)외 50여명과 총과 칼을 휴대하고 하동군 가종면(옥종면) 월횡리 저태진(정공중) 집으로 들어가 '우리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이다. 군자금을 수합하니 협조하라'고 말하니 정태진은 훌륭한 일을 한다면서 일금 8원을 기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6월 같은날 김용이 외에 수십명은 군자금을 수합하기 위해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이진원 집으로 들어가 ‘우리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이라고 말하고 군자금을 수합한다고 하니, 이진원은 말하기를 ‘조선인으로 조국을 구하는 의병을 안 도우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며 엽전 20원과 명세포 3필을 기부했다“고 김용이 의병부대원의 활약을 담고 있다.

이와함께 책에는 “이상수 장군 등은 김용이 외 수십명과 함께 곤봉을 들고 산청군 단성면 당산리 이세영 집으로 들어가 '우리는 의병이다. 군사에 필요하니 의연금을 내라'고 하니 자시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최인환의 소유 쌀 20석을 기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용이 의병부대원은 이밖에도 1908년 8월 산청군 시천면 덕산골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 참여했지만 공식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진주의 향토사학자 추경화씨의 증언이다.

조카 상명씨에 따르면 용이씨는 1917년 11월 딸을 만나러 창원 집에 들렀다가 왜경에게 들켜 창포(창원 고성 경계)에서 배를 타고 도주하다가 거제 앞바다에서 왜경과 맞서다 바다에 뛰어 들었다가 순절했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독립운동사 333페이지에는 ‘金龍伊 慶南 昌原 독립운동’으로 김용이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을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가 90여명을 발굴한 향토사학자 추경화씨는 “김용이 애국지사는 당시 이상수 장군의 휘하에서 활발한 의병활동을 벌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국가 차원의 서훈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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