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신장개업
아침을 열며-신장개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3.19 15: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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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신장개업

20여 년 전에 비디오가게를 열었다. 막내가 돌잡이였고 큰애가 다섯 살이었다. 한 삼년 영업을 해서 먹고 살았다. 그런데 웬걸 컴퓨터가 집집마다 한 두 대씩 생기면서 비디오 산업은 급격히 하향길로 접어들었다. 막차였던 것이다. 다행이도 이층에 살림집이 딸려 있어서 비디오가게는 창고로 사용하며 아이들을 키우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습에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내 아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도 모아서 비디오가게를 한쪽으로 몰고 남은 공간에 공부방을 열었다. 큰아이가 커서 군 입대를 했고 제대를 했다.

큰아이는 제대 말년에 창고가 되어 있는 비디오가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연구했고 동네 사랑방을 만들어보자는 데에 착안했다. 어차피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가게이니 싹 비우고 깨끗하게 단장해서 침체된 동네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수다도 떠는 작은 문화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그 제안을 할 때는 아들이 제대 말년이긴 했지만 군복무 기간이었기 때문에 어미인 내 입장은 무사히 제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조건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아들아, 제대하면 1000만 원 선물로 줄께 그걸로 사랑방 만들어! 선뜻 말했다.

아들은 무사히 제대를 했고 나는 그간 열심히 일해 번 돈 1000만 원을 아들 계좌로 양도했다. 그리고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하고 보니 아들의 컨셉이 너무도 대견하고 고맙던 것이다. 실은 우리 동네는 거의 20년 동안 재개발이 되네마네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20년 동안 말이다. 그러니 동네가 통째로 노후되어 사람도 환경도 팍삭 늙는 중이다. 마치 재개발이 당장 될 것처럼 떠드는 축이 늘 있다 보니 새로운 가게를 연다는 건 꿈도 못꾼다. 실제로 어쩌다 가게를 열었다가도 몇 달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실정이다. 그런 곳에다 비영리 문화공간이라니 놀랄밖에 없다.

가게를 정리하고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꾸미는 동안 내내 동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 생기는지 묻고 취지를 듣고는 정말이지 쌍수로 환영해 주었다. 원래 가게 이름인 ‘이야기마을’을 그대로 살려야 된다고 이구동성 응원해주었다. 그간의 고생이 싹 사라졌다.

가게를 새롭게 꾸미는 것보다 20년 동안 쌓인 잡동사니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고역이었다. 십 년 넘게 영업을 하며 쌓아온 비디오테이프를 내다버리는 일이 가장 고생스러웠다. 게다가 20년을 살며 쌓아온 생활 폐품들을 정리하는 일이 정말이지 장난 아니었다. 끝도 없이 끌어냈다.

공부방을 운영하며 창밖에 화단을 가꿨는데 누가 인동초를 주어서 키웠다. 그런데 이 인동초라는 식물은 그 번식력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대단했다. 한해면 온 화단을 장악해버리다 보니 인동초의 번식을 막는 게 일이었다. 아무리 뽑아내도 화단 어딘가에 또 살아나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콘크리트 바닥으로까지 들어가 갈라진 틈을 찾아 전혀 엉뚱한 곳에도 살아났다. 가게의 모퉁이에 기둥 아래 자리를 잡은 것은 어쩔 수없이 위로만 못 가게 넝쿨을 잘라주며 두었다. 그런데 가게를 열고 보니 새로운 컨셉이랑 너무 잘 맞아 ‘인동초 영토’를 간판으로 고민 중이다.

파벽돌을 장식해서 주방을 만들고 예쁜 조명으로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한 실내를 창출했다. 국내 최고의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의 감각이 사랑방 곳곳에 새롭게 스며들었다.

어제 가장 중요한 커피머신이 들어왔다. 다음 날 마침 휴일이어서 아들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웃이 문을 열고 지금 커피를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팔 수는 없고 그냥 대접할 수는 있다고 하자 미안하다며 개업하면 정식으로 돈을 내고 마신다고 해서 서로 웃었다. 모두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물론 아들이 가장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믿음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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